낡은 생각들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
하늘의 편지 제878호 발행일: 2003년 3월 16일
신께서 말씀하셨다:
에고와 왜소함(smallness)은 같은 것이다. 심지어 에고가 너를 크게 느끼도록 만들 때에도 그것은 너를 속였는데, 그것이 단순히 너의 왜소함을 부풀렸기 때문이다.
작으면 고통이 따른다. 에고는 상처를 입는다. 인간 고통의 피할 수 없는 큰 원인들일지라도, - 나를 용서해라 - 나는 에고가 스타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네가 존재의 진실을 느낀다면, 동시에 고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웅장함은 고통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네가 영원히 나와 함께 있을 때, 어떻게 고통이 있을 수 있겠느냐? 진리의 영광이 어떻게 고통을 줄 자리를 만들 수 있겠느냐? 그것은 비논리적이다.
지적으로 너는 이것을 알고 있다. 너는 무엇이 진실인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멈추게 하는 것은 너의 지성이다. 너는 너와 내가 지구상의 어떤 조건에 상관없음을 알고 있다. 너는 그것이 그래야만 함을 알고 있다. 그것은 지능에게 의미를 만드는데, 안 그러냐, 동시에 지능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심지어 그것을 따를 수 없다. 너의 지능은 비웃는다. 너의 지능은 회의론자가 된 것에 대해 그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낀다. 그것은 증거에 대해 그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낀다. 너의 비옥한 마음은 말한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는 어떤가? 저것에 대해서는 어떤가? 나의 사랑하는 자들의 상실에 대해선 어떤가? 이 눈물들에 대해선 어떤가?”
너무 자주 너의 지성은 삶을 고통과 연관 짓는다. 그것은 삶을 기쁨과 연관시킬 수 있었다. 왜 안 되냐? 왜 불가피한 것이 고통을 일으켜야만 하는가? 예를 들어, 왜 늙은이들이 자주 젊은이들보다 덜 바람직하게 보이느냐? 왜 지능이 순진함보다 선호되는가? 왜 지능이 첫째 자리에 놓이고, 가슴에게 뒷자리가 주어지는가? 왜 작은 일들이, 심지어 네가 작다고 알고 있는 삶 속의 일들이, 왜 그것들이 너의 가슴이 더 많이 알고 있는 일들보다 우선하는가?
그것은 네가 동시에 두 가지 수준의 삶을 사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것이 네가 하는 일이다. 너는 그것들을 앞뒤로 확대한다. 너는 그 편들을 바꾼다. 그것을 너에게 유리하게 사용해라.
작게 생각할 수 있다면, 크게 생각할 수도 있다.
네가 에고의 공격을 받을 때, 더 크게 생각하기 시작해라. 에고의 생각들을 더 나은 것들로 대체해라. 만약 에고의 자극이 너를 우울하게 한다면, 더 높은 고지로 돌아가라. 만약 누군가 너를 무시한 것이 너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면, 너의 다친 생각을 너의 중고차를 거래하듯이 바꾸어라.
땜장이들의 시대에, 지구상에 “낡은 냄비 대신 새 냄비를” 사라는 구호가 있었다. 나는 “낡은 생각들 대신에 새 생각들을” 가지라고 말하는 천국으로부터 온 외치는 자이다. 나는 종을 치면서, 나는 나의 물건들을 팔며, 나는 소도시를 돌아다닌다. 나의 고객들은 가슴들이다. 나의 지불은 네가 나의 물건들을 받아들이고, 그리하여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나는 그 지불 방법을 받아들인다. 나는 다른 어떤 것도 받지 않는다.
현재 너의 마음 속에 있는 그 내용물의 부피로 어떻게 네가 불만스럽지 않을 수 있는가? 너의 마음은 너를 황폐하게 한다. 너의 마음에게 다른 식사를 주어라. 그것을 그처럼 작은 영양가 없는 것들 대신에 영양이 풍부한 생각들로 채워주어라. 그것을 진실로 채워라.
방을 새로 꾸며라. 마음을 다시 꾸며라.
식품 저장실을 다시 칠해라. 생각을 다시 칠해라.
네가 수필을 쓸 때, 너는 쓰고, 다시 쓰면서 그것의 완성도를 높인다. 그러나 그것이 너의 쓰이지 않은 생각들로 올 때, 너는 그것들은 편집하지 않은 채 남겨둔다. 너는 너의 생각이 너와는 별개라고 생각되듯이 그들만의 삶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들은 너의 생각이고 네가 그것을 책임지고 있다. 너는 너 자신의 생각들의 희생자가 되게 되어 있지 않으며, 또한 그 환경 속의 다른 누군가도 그렇게 되게 되어 있지 않다.
내 생각을 받아들여라. 나는 그것들을 너에게 준다. 그것들을 받아들여라. 그것들을 가지고 가라. 나는 네가 그것들을 너의 것으로 만들고, 너의 그 마음을 진실로 재프로그램하도록 의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