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너무 억지스럽다
하늘의 편지 제850호 발행일: 2003년 2월 16일
신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군중 속에 있거나 혼자 있을 때나 큰 차이가 없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너는 너 자신과 동반하고 있다.
너는 혼자뿐만 아니라 군중 속에서의 외로움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외로움은 네 생각의 낭비다. 외로움은 혼자 있고, 알려지지 않은 채, 보살핌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 너의 잘못된 생각에서 온다.
너는 외로움을 삼키려고 노력한다. 너는 큰 소리로 “날 봐,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한다. 아니면 조용히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한다. 아니면 너는 이런저런 시간에 그 둘 다를 한다. 잡아당겨라, 아니면 밀쳐라. 가까이 오라, 아니면 멀리 가라. 여기 머물라, 아니면 결코 오지 마라.
너는 관심을 갈망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인정받기를 동경했는지! 그러는 동안, 알아봐야 할 사람은 바로 너다. 너는 자아실현을 추구하지만, 너는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네가 필요로 하는 피드백은 네가 자신에게 주는 피드백이다. 너 외부의 아무도 너의 가슴을 달랠 수 없다. 말하자면, 오래 동안은 아니다. 물론 나는 달래지만, 나는 너의 외부에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실현을 얻으려면, 너는 너의 관심을 너 자신으로부터 떼어야만 한다. 자기중심주의는 자기중심성에 도움이 된다. 너의 생각은 너에 관한 것일 때 작은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그것들은 자기 연민에서 자기 만족으로 발전한다. 아무도 너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너다. 아무도 너를 알아채지 못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너다. 너는 종종 너를 떨어져 있게 하고, 절연하고, 고립되게 하는 순환적인 생각들에 익숙해지지 않았는가?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깨닫거나 스스로 에누리하는 사람은 바로 너다.
불만에 귀를 기울여보라. 네가 어떤 단어를 사용하든, 의심의 여지 없이 또는 대체로, “나는 인정 받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는 “나는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러쿵저러쿵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한다”거나 “전혀 사랑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식으로, 너는 네가 고통당하고 있다고, 혼자 고통당하고 있다고 너 자신을 확신시킨다.
영어의 ‘나(I)’라는 단어는 현명하게 대문자로 쓰여 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꾸고 싶다면 ‘나’라는 단어를 말할 때 ‘신(God)’으로 바꾸도록 마음속으로 노력하라. 너는 네가 하는 말의 진실과 거짓 또는 정확하고 어리석은 말을 듣기 시작할 것이다. 모든 대화는 너 자신과의 대화다.
그리고 ‘너’라는 말을 할 때도 마음속으로 ‘신’으로 바꿔보도록 하라. 난공불락의 진리는 신이 신에게 말한다는 것이고, 너의 생각은 그것들이 나를 마음에 두고 있을 때 더욱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시험해 보기: “오늘은 내가 뭘 하고 싶은가?” 대신에 “신은 오늘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생각하라. “너는 뭘 보고 있니?”라고 누군가에게 말하지 말고 “신은 뭘 보고 있니?”라고 말해라.
네가 누구인지 그리고 네가 다른 모든 사람이 너/나, 우리라는 것을 기억할 때 너의 하루의 모든 음색은 바뀔 것이다.
언어는 얼마나 불완전한가! 문법은 틀리다. 목적어가 없다. 복수가 없다. 오직 주어만이 있고, 오직 단수만이 있다. 하지만, 개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단수도 없다. 오직 하나됨(Oneness)만이 있다.
언어는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사실이 아닌 것을 묘사하기 위해 언어가 생겨났다. 진실에는 언어가 필요 없다. 진실은 언어를 능가한다.
그러나 나는 네가 혀를 조심할 것을 충고한다. 특히 말로 형성된 너의 생각을 주의하라. 너의 말을 바꾸어라. 너의 마음을 바꾸어라. 너의 생각을 바꾸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