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편지 제904호 발행일: 2003년 4월 12일
신께서 말씀하셨다:
좌절감을 느낄 때, 너는 나에 대한 ‘자각 없음’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무언가가 더 중요해질수록, 더 즉각적일수록, 나보다 더 무시하기가 힘들다.
심지어 네가 경미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들도 너를 소모시킬 수 있다. 너를 산만하게 하는 것은 사건의 규모와 상관없다. 너의 관심을 끄는 듯 보이는 것에 상관없이, 너는 떠났고, 나를 잊어버렸다. 어딜 가든 난 너와 함께 간다는 걸 잊었다. 너는 나를 완전히 잊어버려서, 눈앞의 작은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물론, 나를 잊는 것은 고의적인 것이 아니다. 넌 그냥 짜증으로 인해 너무 힘들어했다.
이런 때에, 네가 신의 자각을 버렸다는 것을 너에게 일깨워주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 수 있겠느냐? 아마 짜증 그 자체만으로도 너에게 상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짜증 그 자체가 울리는 신호가 되게 하자. “신에게로 돌아와라.”라고 짜증은 말한다. “네가 누구인지 기억하라”고 짜증은 말한다. “근원으로 돌아오라.”고, “너 자신을 다시 찾아라.”라고 짜증은 말한다.
얘야, 우린 끊길 수 없단다. 하지만 너는 너의 쪽의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은 그 수화기를 다시 집어 드는 것이다. 난 아직 여기 있어. 내가 없을 때는 결코 없다.
가끔 너는 위로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너는 차라리 네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나는 좌절과 짜증은 너의 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단지 네가 좋은 시간을 갖지 못하는 파티를 떠나듯이, 너 자신을 짜증으로부터 분리시켜라. 우리의 연관성을 기억해라. 집으로, 나에게 돌아오너라.
몇 번이고 너는 나보다 짜증을 선택한다는 게 놀랍지 않으냐? 그것이 우습지 않으냐, 네가 문제들을 받아들이는 데는 그처럼 많이 주목하면서, 그러한 시간들에서 너는 나를 얼마나 적게 받아들이느냐?
가슴에 손을 얹고, 나를 기억하라. 나를 너의 자각 속에 가까이 두어라.
만약 네가 나를 생각하고 싶지 않거나 나를 믿지 않는다면, 너를 다른 파장으로 바꿀 나의 창조물의 일부를 생각해 보라. 나이아가라 폭포나 시원한 계곡의 물줄기나 큰 하늘을 생각해보라. 단지 충분히 큰 것만이 너의 마음을 너를 괴롭히는 것으로부터 데려갈 것이다.
나에 대한 너의 관심은 꽤 짧다. 나는 훈육은 아니지만, 네 마음도 방황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만약 다시 방황하게 된다면, 돌아오너라. 몇 번이고 다시 돌아오너라.
네가 바느질에서 한 코를 놓칠 때, 너는 그것을 다시 풀고, 그런 다음 계속한다. 내게로 돌아가는 게 얼마나 더 쉬운가! 그리고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너는 얻는가. 나를 변함없이 갖는 것으로 부가된 대가는 없다. 별들은 비싼가? 아니면 태양과 달이 비싼가. 어떤 가격도 요청되지 않으며, 어떤 가격이 거기 가능하게 있을 수 있는가? 내가 제공하는 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나를 신으로 만드는 것 중 하나이다.
너의 가슴을 나의 것을 향하도록 하는 불편을 기다리는 대신, 왜 애초에 나를 너의 일과의 일부로 만들지 않느냐? 신의 가호를 받아라. 어쩌면 한 시간 동안? 너의 관심이 단지 나의 것으로 가볍게 떨어지게 해라. 너의 가슴이 “그래, 신이 있어”라고 말하게 해라. 아니면 “그래, 여기 신이 있어. 바로 여기에”라고 말하게 해라.
가슴을 더 많은 나로 채워라. 너의 마음이 작은 일들로 덜 가득 찰 것이다. 그것은 글꼴의 크기를 바꾸는 것과 같다. 글꼴 크기를 선택하면 해당 크기가 된다. 같은 방식으로 너는 너의 생각의 크기와 빈도수를 선택할 수 있다. 네가 헌신하는 것을 선택하라, 그러면 너는 그것이 될 것이다. 너의 자각이 나의 것이 되고 있다. 그것은 그렇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