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편지 제908호 발행일: 2003년 4월 16일
신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과거나 미래를 들여다볼 때, 너는 그림만 볼 수 있다. 네가 알다시피 과거와 미래는 사진들이다. 과거는 퇴색한 사진첩이다. 그것들은 2차원적이다. 너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너는 과거를 위한 공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디에 놓을 수 있는가? 어디에 보관할 수 있는가? 그것의 대부분은 사라졌다. 왜 들고 있느냐? 그런데도 너는 이 정지된 사진들을 계속 끄집어낸다.
미래도 또한 사진으로 만들어지는데, 현상되지 않은 사진들이다. 미래는 네가 시간에 앞서 찍은 사진들로 존재한다. 미래는 멀리 던지는 공과 같고, 공의 착지와 착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하게 된다.
과거는 네가 본 연극이다. 미래는 너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현재인 지금은 또 다른 이야기다. 그것은 차원들로 가득 차 있다. 현재의 포용 속에는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현재를 점령할 수 없다. 그것들은 오직 너의 마음만 사로잡을 수 있다. 너는 시간을 표시하기 위해 선을 그린다. 너는 시간을 환영으로 여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너는 그것이 환영적이라는 데는 동의할 것이다.
너는 과거가 영원하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없으므로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네 마음속에 박힌 생각일 뿐이다. 모든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오직 현재만이 영원하다. 존재는 영원하다. 현재는 생각을 넘어 있다. 현재는 영원하다.
너는 그 흐름이고, 그리고 항상 흐르는 현재가 있다.
시간은 가만히 서 있지 않는다. 시간은 결코 그런 적이 없다. 시간은 또한 경주도 아닌데, 그것이 존재하지 않을 때 그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세상이 시간의 개념 속에, 시간의 지각 속에, 시간의 미터기에 사로잡혀 있다. 세상은 심지어 시계들을 가지고 있다.
너는 천국에 있는 시계를 상상할 수 있느냐?
세상은 시간을 너무 뻔뻔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것은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메트로놈이 딸깍 소리를 내자 세상이 그쪽으로 고개를 숙인다. 세상은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에 허둥지둥 달린다. 그것은 경주하지만,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시계 바늘이 먼저 간다. 태엽 장난감이 너의 속도를 정한다. 세상이 시계 바늘로 움직인다는 것이 놀랍지 않느냐? 이게 무슨 어리석은 짓이냐? 누가 시간의 지휘봉을 선언했느냐?
육체는 항상 해체된다. 환영은 깨진다. 그것은 환영이기 때문에 지속될 수 없다. 환영은 진실에 못 미친다.
사랑은 지속되는데, 그것이 결코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한다. 그리고 너는 존재한다.
네 몸은 폴디롤(fol de rol: 의미가 거의 없고 실제보다 더 중요하거나 복잡해 보이게 하는 불필요한 행동이나 단어)이다. 그것은 시간 경과에 따라 접전을 벌인다. 둘 다 왕이 되기를 열망한다. 하지만 너는 시간과 육체와는 무관하다. 너는 다른 코스를 달린다.
너는 시간이 없다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느냐? 시간이 존재하지 않을 때, 무엇이 서두름이 될 수 있는가?
삶에는 나름의 스케줄이 있다. 그것은 아무 데도 인쇄되지 않았다. 네 삶의 일정은 네가 멀리서 부드럽게 듣는 메아리 같다. 너는 그것에 응답한다. 그것은 너를 저항할 수 없게 부른다. 네가 그것을 알기 전에, 너는 바로 그 존재하지 않는 시간에, 바로 그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나타났다.
그리고 네가 지금 여기 있다. 나는 ‘여기’라고 말한다. 그 단어의 사용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지금에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나는 ‘너’와 ‘나’를 말하는데, 우리는 하나라기보다 둘임을 의미할 때 말이다.
나. 너. 우리(I AM. You ARE. We).
그밖에 또 할 말이 뭐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