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편지 제911호 발행일: 2003년 4월 19일
신께서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이들아, 내가 너희를 내게 부르노라. 너는 나의 부름이 불안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너의 간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를 부르고 있는 것은 나이고, 그것은 ‘내가 내게로 부르고 있는 너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얼마나 상호 호환적인가! 우리는 얼마나 하나됨의 결합인가! 언제 우리가 멀어지는 듯이 보였는가?
삶의 얼마나 많은 것이 수학으로 귀착하는가! 너는 아직 하나(ONE)의 개념을 숙달하지 못했다. 너는 셈하느라 바쁘고 무엇이 중요한지 그리고 누가 세는 자이고 누가 세어지는 자인지 잊어버린다. 머지않아 너는 셈을 멈추고 하나됨이 무엇인지 헤아리게 될 것이다. 너는 그것에 몰입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뭐라고 불리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강에서 수영할 때 강의 이름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
그것은 네가 마시는 생수와 같다. 그 물은 다양한 스타일의 병들과 다양한 이름들로 나온다. 그러나 너는 목이 말라 물을 마실 때, 병에 적힌 이름이 너에게 얼마나 중요하더냐? 물은 물이고, 물은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그리고 너는 나와 영원한 하나이고, 그 안의 모든 이들과 모든 것과 하나이다.
이것은 네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그것이 네가 사는 곳이다. 너는 단지 네가 사는 곳이 어딘지 모를 뿐이다. 너는 네가 너와는 다른 자들과 함께 거주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는 지구가 너와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단지 모든 것이 너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너는 거기 네가 있고, 너 외부에 다른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너는 네가 너에게 속하는 몇 개의 소유물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는 그것들을 너의 것으로 부른다. 너는 네 가족을 너의 것이라고 부른다. 너는 자신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온 우주가 너의 것이다.
너 밖에는 아무도 없으니, 밖에선 소유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너는 몸 안에 있는 의식이다. 그리고 너는 거기에 있는 의식보다는 몸과 동일시한다. 몸의 중요성에는 많은 신빙성이 부여되고, 우주를 가로지르는 의식은 별로 신빙성이 없다. 너는 육체적인 문제에 정통하지만, 너의 것이고 나의 것인 그 의식은 적게 의식한다.
그것은 네가 시계가 너의 손목을 둘러싸는 가죽 띠를 가진 하나의 다이알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데, 마치 시계의 째깍거림이 그 얼굴 위에서 돌고 있는 손들로부터 온다는 듯이, 마치 네가 보는 것과 독립적인 내적 메카니즘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너는 밑에 숨겨진, 보이지는 않지만, 네가 보는 것에서 결정적으로 일하는 다이알의 주요 장치가 있음을 잊어버린다. 너는 단지 그 시계의 내적 작용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너는 그 시계의 째깍거림과 그것이 번쩍이는 그 시간에 사로잡힌다. 너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인식하고, 존재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됨이 존재한다. 덧셈, 뺄셈, 나눗셈, 곱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단지 운동일 뿐이다. 그것들은 하나됨과 노닥거리는데, 그러는 내내 전체 창조 안에 단지 하나됨 밖에 없을 때 말이다. 전체 창조는 하나됨이다. 하나됨은 너의 이름이다.
그리고 사랑이 아니라면 하나됨은 무엇인가? 사랑은 하나됨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데, 비록 네가 사랑이 다양하게, 마치 그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듯이 있다고 너 자신을 속인다 해도 말이다. 사랑은 너의 내면으로부터 온다. 너는 사랑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사랑 그 자체이다. 하나됨과 사랑은 너이다.
네가 수영하는 그 강의 이름은 사랑의 하나됨이다. 그리고 너는 그 강이고, 그것이 포함하는 모든 것이다. 너는 그 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