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에 대한 훈시(2)
서로 간에 대화로써 일을 풀어나가는 것이 곧 상생원리이니,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러한 방법이 아니면 도인을 올바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서로의 상황과 입장을 잘 모를 때 오해와 의심이 생기게 됩니다. 대화를 통하면 모든 오해와 의심을 풀어낼 수 있고 화합 단결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남아있으면 올바른 도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로 간의 의심과 오해를 풀고 이해하는 것을 해원상생이라 합니다. (1990. 2. 10)
금년의 목표는 뭐든지 대화로써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대화로써 이해하고 풀어 나가는 것이 도의 일이며 해원상생의 원리인 것이고 우리의 원 근본이다. 이것이 밖에까지 미쳐서 사회에서도 ‘대화, 대화’ 그러면서 생활화하자는데, 정작 우리가 우리의 근본에 대해서 모른다면 되겠는가! 우리의 원 근본이 해원상생 원리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몸에 배어야 한다. (1990. 3. 4)
도인은 수도를 해나가니까 뭐든지 모면할 수 있다. 모면하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이 이해다. 수도의 제일 중요한 것이 이해다. 제일 위험한 것이 시누, 올케 사이다. 설사 풀렸다고 해서, 동기간이라 해서 서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해도 척이 맺힌 것이다. 척이라는 것은 자꾸 쌓이고 맺히게 되는 것이다. 확 풀었다고 생각하는데 풀린 게 아니다. 이걸 본다면 위⋅아래에 거스르는 말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마음 자체도 가져서는 안 된다. 운수를 바라는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수도가 참말로 어렵다. 해원상생이라는 것은 척을 푸는 것이다. 절대로 마음속으로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오해해서는 안 된다. 척을 맺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 남을 잠깐 오해만 해도 척은 쌓인다. (1990. 3. 4)
도인들을 교화하는 것은 이해시켜 나가는 것이다. (1990. 6. 17)
못할수록 자숙하고 자기의 행동을 삼가야 하는데 지금 그렇지가 않다. 임원의 위치를 알아서 모든 것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때린다는 것, 사람을 때려서 만든다는 것,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은 도에서 벗어난 탈선행위다! 도주님 말씀에 성지우성(誠之又誠)하고 면이수지(勉而修之)하면 곡진이해(曲盡理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이라 했다. 그러니 정성에 정성을 들이면 대화로써 모든 것을 풀어나갈 수 있다. 도인을 다스리는 것은 모든 것을 이치를 들어 풀어서 설명하고 잘하도록 살펴주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시킨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원리를 믿고 나가면서도 행동을 반대로 하면 안 된다. 사회에서도 모든 것을 대화로 해나가자고 하는데, 그것이 본래 우리 것임을 잊으면 안 된다. 잘못을 본인이 충분히 알도록 해주면 자연적으로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도가 좋고 옳다는 것을 잘 이해시키면 잘 믿을 것이다. 대화로써 모든 것을 해결지어라. (1990. 6. 17)
도는 자기가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임원들은 도인을 교화할 때 도의 진리를 이해시켜야 한다. 도의 진리를 가르쳐 몸과 마음에 배이도록 해주는 것이 교화다. 모든 것을 잘 알도록 진리로써 이해를 시켜야 한다. 칭찬과 나무라는 일까지도 모두 진리로써 이해시켜야 한다. 이런 것이 어렵다. 아직은 사람이므로 모욕을 주어서는 도인으로 만들 수 없다. 진리로 이해시켜 자기 스스로가 깨닫도록 만들어야 한다. 도인에게 위압감을 주어서 하면 금세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되질 않는다. 우격다짐으로 도인을 대하는 사람과 도인을 이해시키려 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드러나진 않지만, 강압과 위압감으로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1990. 7. 14)
‘나는 이렇다’ 하면서 나를 강조하면 자꾸 어두운 데로 빠지게 된다. 내가 나의 잘잘못을 판단하지 못하면 운수 받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 공부에도 허령(虛靈)이란 게 있다. 허령이 다른 게 아니다. 허강(虛降), 진강(眞降)이 있는데, 허강을 받는다는 것은 허령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는 올바르지만 남이 볼 때는 옳지 않다. 이것이 정신이상이다. 그렇게 되면 완전히 못쓰게 된다. 이 병을 고치려면 자기가 진강이 아니라 허강을 받았음을 깨닫고 허령임을 인정하면 된다. 수도 과정 중에도 이와 같이 자기가 잘못된 것을 알면 스스로가 고쳐진다. 스스로 잘못을 깨달으면 밝아지고, 깨닫지 못하고 계속 가면 점점 어두워져서 도에서 아주 멀어지게 된다. 내가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런 잘못된 일이 앞으로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안 된다. 잘못을 깨달아야 한다. 강압적으로 하지 말고 진리로써 본인이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이해시켜야 한다. 스스로가 깨닫고 깊게 반성하고 뉘우치면 제대로 갈 수 있다. (1990. 7. 14)
야단도 받을 사람이 있고 받지 못할 사람이 있다. 임원이라면 제일 먼저 개개인의 심정이나 성격을 잘 파악해야 사람을 만들지, 그렇지 않으면 못 만든다. 야단을 칠 때 이해를 하는지 반감을 가지는지 잘 보아야 한다. 야단을 맞고 반감이 없다고 하면 없지만, 있다고 하면 참 무서운 것이다. 야단을 칠 때 자기가 잘 깨닫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도인들은 가지각색이다. 똑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잘 이해시키고 깨닫게 해야 어떠한 난관이라도 뚫고 나간다. 우격다짐으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도인을 다루는 데는 금싸라기보다도 더 귀하게 여겨야 한다. 이는 도인들을 중하게 다루어서 운수를 받도록 잘 인도하라는 뜻이다. 방면에 불상사가 나면 그 책임은 임원들에게 있다. (1990. 7. 14)
도인과 임원 사이를 끊어 놓는 사람이 많다. 서로가 이해해야 한다. 모든 문제는 오해에서 생기므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위 임원들은 솔선하고 몸에 배도록 해서 아래 사람들이 배우게 해야 한다. 그래야 옳은 임원, 옳은 도인이 된다. 임원, 선⋅교무, 수반 도인들이 없다면 내가 선⋅교감이 될 수 있겠는가? 아래 임원체계가 바로 서야 선⋅교감이 된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이해를 잘해야 한다. 임원으로서 윗임원과 도인의 사이를 이간시키고 불신을 조장하는 것은 상인해물(傷人害物)로서 죄가 크다. 살인죄보다 큰 것이다. (1990. 10. 1)
화목이 제일이며 해원상생의 근본원리가 된다. 이해하는 것,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도며 도통 받을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만 된다면 도통을 당장 받을 수 있다. (1990. 10. 1)
우리는 순리, 경위를 배워 나간다. 순리, 순서를 배워 나가는 것이다. 뭘 하나 한다고 했을 때 거기의 순서, 즉 그때의 경위에 맞아야 한다. 경위, 순서, 이것이 우리 도의 진리이다. 이 진리만 잘 깨닫는다면 틀리는 게 없다. 오늘날 이만한 것은 사회 사람들이 생각하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한다. 우리의 진리만 이해하면 막히는 게 없다. 순리대로 하면 모든 게 다 풀려나간다. 나 역시도 도를 믿고 수도만 했지, 건축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배우거나 공부해 본 적이 없다. 서울 중곡동 도장을 지을 때도 배워서 알고 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배우고 경험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해놓고 생각할 때도 그렇다. (1991. 1. 3)
대순은 둥근 것이다. 끝이 없고 막힘이 없다. 무극, 태극이라 한다. 무극이 대순이요, 대순이 무극이다. 무극에서 태극이 나온 것이 아니고, 무극이 태극이고 태극이 무극이다. 태극은 극이 없이 크다는 뜻이며 대순을 의미한다. 우주의 모든 천지일월 삼라만상의 진리가 태극, 즉 대순에 실려 있다. 그 안에서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순진리회요람』에도 대순진리(大巡眞理)를 면이수지(勉而修之)하고 즉 부지런히 닦고 성지우성(誠之又誠)하면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곡진이해(曲盡理解) 즉 구부러지고 펴진 곳을 모두 이해함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하다고 했다. 이 진리를 깨닫고 안다 하면 안 풀리는 게 없다. 다 된다. 다 풀린다. 순리로 하는 것이다. 순리로 하면 모든 게 다 풀리고 빠른 것이다. 대순을 이해하고 진리만 알면 막히는 게 없고 모르는 게 없다. (1991. 1. 3)
한 가정에서 두 사람은 믿고 세 사람은 이해를 못 해 안 믿는다고 해서 그 세 사람이 도인이 아닌 게 아니다. 큰 죄만 안 지으면 된다. 크게 말리지 않으면 운수마당에 간다. 부모가 어렵게 해도 참고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서 도리를 다하면 된다. 도를 안 믿는 식구가 죄를 안 짓게 하기 위해서라도 할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도인된 마음이다. 도를 믿는다 할 때는 이것저것 이해해서 싸우지 말고 참아야 한다. 척이 되면 서로가 안 좋다. 내 몸을 내가 생각해서, 가족 한 사람이라도 더 생각해서 도리를 다해야 한다. 힘이 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참고서 잘들 해야 한다. (1991. 1. 20)
일하는 사람한테 반말하고 막 대하면 안 좋아한다. 옛날에 백정이라 그러면 사회에서는 천인(賤人)이었다. 백정에게 “고기 한 근 주시오.” 그러면 아주 많이 주고, “고기 한 근 줘.” 하면 반 근도 안 준다. 천하게 생각하고 천한 말을 하면 백정에게 욕을 얻어먹고 고기도 조금밖에 못 얻는다. 자기 할 도리 다하고 자기가 싫은 것은 남에게 하지 말고 그러면 다 좋아한다. 그러다 보면 주는 것도 아깝지 않다. 그것이 화합이다. 옛날에 천리교 믿는 사람과 같이 지낸 적이 있었는데 성질이 고약했다. 물건을 외상으로 사고서도 외상값 받으러 오면 싸움질하고, 세금도 안 내고, 이웃에서 뭐하려고 하면 무조건 반대만 했다. 그래도 나에게는 잘했다. 잘해주면 잘해주는 법이다. 남에게 인심 얻고 하는 것이 모두 나에게 있다. 싫은 일 당해도 이해하고, 남이 싫어하는 일 안 하면 나를 싫어할 리가 없다. 이것을 모르면 이해를 시켜야 한다.
(1991. 1. 20)
잘 알겠지만, 우리 도가 그렇다. 옳고 좋다는 것만 내가 완전히 이해했다면 문제 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르는 데서 문제가 오는 것이다. 우리의 법이 있고 제도가 있는데, 이걸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우리 도가 옳고 좋다는 것만 충분히 이해했다면 지키는 것은 쉽다. 우리의 법(法)이 도법(道法)이다. 상제님의 유지(遺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받들어 목적 달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나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즉 믿는다는 것은 상제님의 뜻을 받들고 도주님께서 정하신 법을 지켜나간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모르면 배워야 하고 알면서도 벗어난다면 죄다. 임원으로 이런 것을 몰랐다면 한두 사람도 통솔해 나가기 어렵다. (1991. 2. 20)
우리는 전부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까 우리의 옳고 좋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면 모든 게 쉽고, 모르면 어려운 것이다. (1991. 2. 20)
1년 12달의 조화를 도라 하고, 이것을 공부하여 통하는 것이 도통이다. 이런 조화의 한 자리를 맡고자 하기에 자리 공부인 것이다. 우리 도는 정성을 들여 병 낫고, 집 잘되고, 덕을 보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다. 우리는 도통을 하려는 것이다. 도통을 하려면 해원상생을 해야 한다. 생활화해야 한다. 해원상생이란 사랑인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쉽게 말해 아무 원망이 없고 미운 게 없는 그것이 해원상생이다. 해원상생을 생활해 나가려면 이해해야 한다. 이해 없이는 안 된다. 이해가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말로만 말고 해원상생을 몸으로 실천해 생활해 나가는 것, 그것이 수도다. 미운 게 없고 원망이 없으면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어린애를 길러 나가는 그런 것이다. 밉지가 않고 귀찮지가 않고 원망스러운 게 없다. 밉고 귀찮으면 못 기른다. 이해 없이는 안 된다. 이해해야 한다.
내가 개인이 아니라는 것, 내 위치를 생각해서 모든 게 나한테 있다는 것, 말 한마디⋅행동 하나 잘못되면 도에 누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저 서로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해나가야 한다. 남이 나에게 잘해주고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잘해주고 이해해줘야 한다. 포덕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 대순진리회가 추호도 나쁘게 비쳐서는 안 된다. 사회에서 대순진리회를 안 좋게 보는 사람은 안 좋게 보고 좋게 보는 사람은 좋게 본다. 그게 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 우리의 처신에 달려있는 것이다. 늘 명심하고 나가야 한다. (1991. 4. 20)
임원들은 도인들의 마음이 그 정도에 이를 수 있도록 교화해야 한다. 교화로써 진리를 이해시켜 몸과 마음에 감화되도록 하는 것이 임원들의 책임이고 임무다. 도는 천지 대자연이니 도의 진리를 가르쳐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걸 이해시키고 가르쳐주는 것이 교화이다. 모른다면 다 어려운 것이고, 확신하고 믿고 꼭 틀림없다는 것을 안다면 어려울 게 아무것도 없다. 공부를 하면 21일 잠을 안 재우는데 겁먹지 말고 나도 해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스스로 가지게 해야 한다. 마음에는 없는데 억지로 하려고 하는 생각은 안 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마음이라야 된다. 도인들이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임원의 책임이다. 말의 내용을 이해하고 확신하도록 하는 것이 임원의 일이다. 그 사람의 몸과 마음에 아주 배도록 가르쳐야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가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도이고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야 하며 수도를 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1991. 5. 14)
사업이 커나가다 보면 적대시하고 싸움박질을 한다. 참으로 좋지 않다. 대개가 조금 크게 되면 따로 해보려고 해서 그렇다. 그것이 자리다툼이다. 종교인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윗사람의 통솔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밑의 사람도, 위의 사람도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같은 책임이 있다. 밖에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지 않으냐. 현재 사업하는 것을 보고, 현재 호수 가지고 반을 짠다. 그러니 잘들 해라. 서로 이해하며 나아가야 한다. 한쪽이 못해도 다른 한쪽이 이해를 해야 한다. 싸우고 하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하라. 잘해야 된다. (1991. 7. 6)
윗임원이 잘못하면 조금 이해하면 된다. 이해하고 이해시키면 안 고칠 사람이 없다. 그렇게 하지 않고 말거리를 만들면 안 된다. 윗사람의 마음을 맞출 줄 알아야 잘하는 것이다. 그러면 안 되지 하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항상 얘기하지만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면 안 이루어질 일이 없고 안 될 일이 없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1991. 9. 25)
앞으로는 절대로 분열이나 파벌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거기는 공부에서 뺄 것이다. 그것을 놔두면 다른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머지 주위 사람도 봐야 한다. 나에게 조금 안 맞다고 해서 서로 불평하고 싸움박질하고 그러는데, 도가 있다고 생각하면 감히 못 그럴 것이다. 분열은 있을 수 없다. 혹간 잘못해서 그런 건 있지만 그런 것도 이해를 하면 된다. (1991. 9. 25)
이론이 다른 것이 아니다. 진리다. 진리를 표현해서 말하는 것이 이론이다. 진리는 무궁무진하다. 이론, 진리, 이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통해야 다 아는 것이다. 이론은 연구하고 깨달아야 하지, 그냥 듣고는 모른다. 우주 안의 군생 만물을 빠짐없이 다 알면 통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자꾸 말하라. 그러다 보면 된다. 임원들이 남을 몇십 년 가르쳐 왔어도 누가 무엇 하나 물으면 만인(萬人) 앞에서 똑 떨어지게 진리를 말 못하는 사람도 있다. 못한다. 모르는 사람한테나 자기주장을 할지 모르지만…. 잘 안다고 하는 중체 임원이 있어도 자기 선감이 물으면 대답을 잘 못 한다. (1991. 9. 28)
인간 완성은 인간 본래의 양심을 되찾으면 된다. 대운 대통을 받을만한 그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수도의 조항을 이해하고 실천해 나가 인격이 완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안 되고 있다. 모든 것을 형식으로 알고 그렇기 때문에 지켜지지 않고 실천이 안 되는 것이다. 인격 완성이 무엇인가? 인간 본래의 본질로 돌아가는 그것이 인격 완성이다. 사람이 되는 것이다. (1991. 10. 27)
대운 대통이 꼭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밑의 도인들을 가르쳐 나가는 데도 제일 중요한 것이 이것이다. 마음과 몸에 배고 행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밑의 도인이 스스로 이해하고 깨우쳐 나가고 행해 나가도록 하는 것, 이것이 교화이고 임원들의 책임이다. (1991. 10. 27)
앞으로 잘해 나가면 막 미어져 들어올 것이다. 그러자면 상제님의 해원상생을 지켜나가야 한다. 안 믿는 이웃하고도 해원상생을 해야 한다. 상대방이 설령 나에게 안 좋은 것을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을 잘 이해하고 미워하지 말고 잘해 나가면 이것이 포덕, 즉 상제님의 덕화를 펴나가는 것이며 우리의 진리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밖의 사람하고도 그렇게 하려면 도인끼리는 더 말할 것이 없다. 맞고 안 맞을 게 뭐가 있는가? 우리는 전부터 친척도 아니고, 이웃으로 알던 것도 아니고, 좋은 도를 인연으로 해서 만난 것이다. 서로 아주 다정하게 하고 그래야 한다. 도인들이라 해도 서로 간에 항상 척을 사면 안 된다. “무척 잘 산다.”는 말도 있지 않으냐? 척이 없어야 잘 산다. 척을 사게 되면 도를 믿는 데도 그렇고 나중에 운수를 받는 데도 큰 장애물이 된다. 서로 아끼고 이해하고 도우면서 믿어 나아가고 그래야 한다. 밖의 사람들이 도인을 안 좋게 얘기하더라도 이해해주고 감싸고 나가면 그게 다 내 모든 복을 쌓는 것이고, 운수를 받는 것도 거기에 있다. 어지간하면 주변을 감싸고 나가야 한다. 감싸 나가면 식구도 늘어나고 믿지 말래도 잘 되어 나갈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절대로 화목⋅단결해야 한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종단 전체도 절대 화목⋅단결해야 한다. 단체이니 하나로 묶여야 한다. 혼자되면 안 된다. 낙오되는 것이다. 도를 같이 믿고 나가는 도인들끼리라도 괜히 상대방이 나를 헐뜯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면 그것을 그대로 갚을 것이 아니라 ‘내가 무슨 잘못이 있는가 보다. 전생에라도 그럴 만한 게 있나 보다.’ 하고 이해해 나가면서 포용하면 다 풀어진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공부를 해보면 대번에 안다. 3명이 공부하면 내 척신이 공부방에 앉은 다른 사람에 응해서 보복한다. 같이 있는 사람을 이용해서 자꾸 방해한다. 도인끼리도 그렇다. 반드시 전생, 과거에 무슨 잘못이 있다. 도를 믿는 데 방해가 되거든, 누가 나를 때리거든 반드시 손을 잡고 위로해주라. 내가 믿는 마음을 갖고 감사하고 나가라.
나는 가만히 있는데 괜히 상대방이 자꾸 나를 싫어하고 방해하면 그것을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것은 저 사람 잘못이 아니라 내가 전생에 죄를 지어 척을 지었는데 척신이 저 사람을 이용하여 나에게 갚는구나.’ 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가면 된다. 상대방을 감싸주면서 나가면 된다. (1992.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