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反省)에 대한 훈시 시한부(時限附)란 앞일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한 시간 앞 운명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사실인데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설사 아는 사람이 있다 해도 함구하는 법이니, 하물며 수도자로서 <전경>에 없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며, 어느 임원이 혹세무민의 교화를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모든 점을 경종(警鐘)으로 하고 거울로 삼아 반성과 일대 혁신의 계기로 만들어 나가라. (1984. 4. 9) 임원들의 도인이 아니라 도인들의 임원임을 반성하는 개과(改過)의 혁신을 기필코 달성하여야 할 것이다. (1984. 4. 30) 고생 끝에 영화(榮華)라 한 옛말은 어떠한 충격을 당하였을 때 전진(前進)의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훼방을 받았을 때는 배암향명(背暗向明)의 도광(道光)으로 반성하여 복마선동(伏魔先動)의 해원상생 진리를 깨우쳐줌으로써, 오도(誤道)의 인식으로 말미암아 부실(不實)의 탈선이 되는 것을 스스로 삼가서 자기 회고(回顧)하는 참다운 도인이 되기를 심서(心誓)하는 신앙자가 되게 하여야 한다. (1984. 5. 26) 금년에는 내적으로 성숙하고 외적으로 더욱 발전하는 한 해가 되도록 전국 도인 여러분은 굳게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내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끊임없는 반성으로 일상 과부족(過不足)이 없는가를 항상 살피어 스스로 지향하고자 하는 인간 완성을 도모해야 할 것이며, 외적으로는 가정, 사회, 국가를 위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찾아 실현하는 계기를 조성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완성이 곧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고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부단한 정진과 수행을 그쳐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1984. 6. 15) 인간은 자기 도량(度量)에 따라 기획하는 설계가 의욕으로 발동되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즉, 기획과 설계의 행동이 의욕적인 발동인데 이 인간의 의욕이란 한이 없어서 허영과 야망으로 넘쳐 허황된 꿈으로 사라지기 쉬운 것입니다. 이와 같이 허황된 꿈으로 화하면 드디어 실망과 후회는 물론 자기도 남도 원망하게 되어 한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허욕이 발동하는 것을 반성하고 조정하여 수심연성(修心煉性)으로 허영과 야망을 경계하고 자기 분수에 합당케 하여 후회 없이 하는 것이 해원(解冤)의 요체(要諦)입니다. (1984. 6. 15) 고성(古聖)은 “언패이출자(言悖而出者) 역패이입(亦悖而入) 화패이입자(貨悖而入者) 역패이출(亦悖而出)”(<대학> 제9장)이라 하였다. 이는 말이 어그러지게 나갔으면 어그러진 말이 들어오고, 재물이 어그러지게 들어왔으면 어그러지게 나간다는 뜻으로 잘못된 언행을 경계함이니, 몸과 입이 내 것이라 하여 함부로 움직이지 못함을 수도하는 사람은 반성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1985. 3. 16) 우리 도인들은 나 자신이 우주의 체(體)로서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열쇠인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우주가 사(私)가 없는 것과 같이, 자신의 편견을 고집하지 말고 전하여 오는 풍문 같은 말을 심량(深量) 없이 급히 받아들이지 말며, 일 처리는 항상 시간의 여유를 두고 해 나가라. 이것이 과부족을 없애는 자기반성의 닦음인 것을 염념불망(念念不忘)하여 내일의 대성(大成)을 위하여 힘써 나가야 할 것이다. (1985. 6. 17) 닦지 못한 인간들의 자존심이 상대를 멸시하며 시비(是非)를 조장할 수 있으므로 내 몸을 바로 잡는 일은 자기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다. 아무리 내가 안다고 해도 여러 사람의 의견만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지식을 높이고 인격을 도야하며 처세의 길을 넓히게 됨이니, 따라서 남을 존중하면 도리어 숭배를 받게 되어 소외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원수의 원을 풀어 은인을 대하듯 하라” 하셨으니 내 몸을 내가 닦기를 힘써 나가려면 반성으로써 날에 날마다 내 몸이 새로워지도록 게을리하지 말아야 곧, 수기(修己)가 되는 것이다. (1985. 8. 7) 충고란 평교간(平交間)이나 동등한 시면(視面)에서 도리의 책임상에 어긋난 잘못을 깨우쳐주는 것을 말함이니, 남에게 충고하기에 앞서 자기부터 바르게 행하면 의당(宜當)히 충고도 할 수 있지만, 만일 사리의 분간도 없이 자기반성도 해보지 않고 충고를 가볍게 하였다면 장소에 따라 도리어 반감을 일으켜서 상생의 은의(恩義)를 해치게 될 우려가 있으므로, 신중을 기하여 이해로써 상대에 상처가 생기지 않고 도움이 되게 하여야 한다. 이것을 충고의 진의(眞意)로 바로 알아서 행하여야 할 것이니, 자고로 ‘남을 책하는 데는 밝지만, 자신을 책하는 일은 어둡다’고 한 말을 거울삼아야 할 것이다. (1985. 8. 29) 거짓이란 위세를 부려 지위를 노리는 것, 자존(自尊)으로 남을 멸시하는 것, 공리(功利)를 과장하기 위하여 자기 사람을 만들기에 힘쓰는 것, 허물을 은폐하기 위하여 아첨하는 것 등이니, 이러한 일을 시행하는 자는 허구심(虛構心)에 여념이 없는 법이다. 끝내는 외로워지고 고독이 온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니, 이 모두가 과부족을 반성하지 않은 까닭이다. (1985. 10. 19) 행동은 남에게 호감을 주기도 하고 상대를 기피하게 할 수도 있다. 행동에 있어 성경신이 요체로 생활화되지 못하여 질적으로 중화(中和)가 되지 못하면 남에게 지탄을 받게 되어 운명에 막대한 저해(沮害)를 당하게 되는 것이므로, 도인 육성의 질적 향상에 있어 언어가 행동으로 옮겨진다는 것을 깨달아서 일상 자신을 반성하는 데 소홀함이 없게 마음을 다하라. (1986. 1. 20) 잘못을 깨닫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그 하나는 허물을 짓기 전에 스스로 잘못된 생각을 자각하며 자제하는 개심(改心)이요, 둘째는 잘못을 저지른 뒤에 비로소 과오를 뉘우쳐 사후 반성하는 두 가지의 자각일 것이다. (1986. 5. 20) 잘못이란 사랑으로 이어지는 인도(人道)의 본래정신(本來精神)을 저버리는 웅패(雄覇)의 인습(因習) 때문이니, <전경>에도 묵은 기운이 채워있는 곳에는 새 운수를 감당키 어렵다 하셨다. 이러므로 마음 지키기가 죽기보다 어렵다 하신 것이니, 우리 도인들은 훈회와 수칙으로 일상 자신을 깨달음으로 반성하여 교화에 힘을 기울이고, 심덕(心德)으로 너그럽고 착하게, 구덕(口德)으로 말을 덕기(德氣)있게, 신덕(身德)으로 행동과 처신을 바로 하여 현명한 수도자의 자질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1986. 5. 20) 첫째, 사람과의 사귐에 상대를 알고 나의 도리부터 먼저 바로 할 뿐이요 탓하는 버릇을 없이 하고, 지기지우(知己之友)가 되지 못하더라도 너그럽게 대하며 폭 잡히는 일을 하지 말며 반성의 여지가 없는 경우라면 충고도 삼가야 한다. 미봉책을 잘 쓰는 사람은 기연이불연성(其然而不然性)이 강하므로 고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인접물(對人接物)에 항상 유의하여 베풀 수 있는 길을 먼저 찾도록 노력해 나가라. (1986. 9. 28) 『전경』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겨 언행(言行)이 일치하는 생활을 하며, 언제 어디서나 신명의 수찰(垂察)이 있음을 명심하고, 속임과 거짓 없이 자신의 도리를 지킴에 있어서 경홀히 생각하지 말고, 일상 자신을 반성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상제님께서 강세하셔서 천지공사를 행하시게 된 연유도 천⋅지⋅인 삼계가 모두 자기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였음에 있는 것입니다. (1986. 10. 28) 상제님께서 천하를 대순하심도 막혀 있는 천지인 삼계를 막힘없는 상통(相通)으로 바꾸시려는 것임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도인 상호 간에 은의(恩義)로써 임원은 항상 반성하여 기거동작을 바르게 하며, 수반은 보은하는 마음으로 믿고 따르며 적중한 예를 갖출 줄 아는 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1988. 10. 10) 내 걱정은 다른 것이 아니다. 첫째, 도인들끼리 시기, 질투가 있다는 것이고, 둘째, 상제님의 도인이 아니라 수임선감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걱정이다. (1990. 2. 3) -------------------------------- 註) 우리 도인들은 도전님께서 걱정하신 이 두 가지를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하나는 양심 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다른 도인들을 시기, 질투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시기 질투가 있다는 것은 양심을 회복하지 못하였다는 것이고, 양심을 회복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통일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반성하여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깨달아야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포덕 교화 수도사업을 하여야 한다. 도 사업은 양심 사업이다. 양심으로 보고 양심으로 듣고 양심으로 생각하고 양심으로 말하고 양심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다른 하나는 도인들을 육성하면서 자기 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私)도인은 사(死)도인이다. 도인은 어디까지나 상제님의 도인, 대순진리회의 도인을 만들어야지 방면의 도인이나 자기 도인을 만들면 안 된다. 도를 보고 따라야 성공이 있지 사람을 보고 따르면 실패한다. 지난날과 현재를 성찰하여 방면의 도인이나 자기 도인을 만드는 경향이 없는지 철저하게 반성하고 오직 상제님의 도문소자를 양성하여야 한다. 도인이 상제님을 믿고 상제님께 성경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운수와 도통이 있다. 올바른 도인을 양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포덕 교화 수도의 지침으로 <대순지침>, 도전님의 훈시를 대목으로 삼는 것이다. 한라산에 서식하는 산죽이 드러난 모습은 수천 수만 가지라도 그 아래 뿌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듯이 임원부터 수반에 이르기까지 전체 도인이 <도전님의 훈시 합본>을 소장하고 날마다 읽고 익혀서 도전님의 가르침대로 수도하고 사업하는 것이 1995년 도전님 은현(隱現) 이후 다시 대순진리회를 세상에 크게 현창하는 유일한 길이다. ---------------------------------- 우리 도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선감, 교감, 보정 등 최고 임원으로부터 평도인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자기 위치와 직위에 따라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항시 자신의 주변을 살피고 반성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職分)과 임무(任務)에 소홀함이 없이 이루어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임감(責任感)과 주관(主觀)이 확실해야만 하고 그에 따른 언행(言行)과 처신 처사(處身處事)에 부족함이 없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990. 2. 10) “나는 이렇다.” 하면서 나를 강조하면 자꾸 어두운 데로 빠지게 된다. 내가 나의 잘잘못을 판단하지 못하면 운수 받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 공부에도 허령(虛靈)이란 게 있다. 허령이 다른 게 아니다. 허강(虛降), 진강(眞降)이 있는데, 허강을 받는다는 것은 허령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는 올바르지만 남이 볼 때는 옳지 않다. 이것이 정신이상이다. 그렇게 되면 완전히 못쓰게 된다. 이 병을 고치려면 자기가 진강이 아니라 허강을 받았음을 깨닫고 허령임을 인정하면 된다. 수도과정 중에도 이와 같이 자기가 잘못된 것을 알면 스스로가 고쳐진다. 스스로 잘못을 깨달으면 밝아지고, 깨닫지 못하고 계속 가면 점점 어두워져서 도에서 아주 멀어지게 된다. 내가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런 잘못된 일이 앞으로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안 된다. 잘못을 깨달아야 한다. 강압적으로 하지 말고 진리로써 본인이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이해시켜야 한다. 스스로가 깨닫고 깊게 반성하고 뉘우치면 제대로 갈 수 있다. (1990. 7. 14) 수도란 잘 지켜나가면서 늘 반성하는 것이다.잘못된 것이 있다면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해서 고쳐나가는 것이 수도다. 수도하는 데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했던 것을 돌아보고 반성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닦여지지 않는다. 잘못을 앎으로써 수도하는 데 발전이 있다. (1991. 10. 30) 지금 우리는 임신년을 보내고 계유년 새해를 맞이했어요. 새해에는 모두들 다 건강하시고 소원성취들 하세요. 지난해에 다 못했던 일 잘하고, 잘하고 잘못했던 일을 반성해서 그것을 교훈으로 삼고, 계유년에는 계획을 잘 세워 새롭게 잘들 해나가도록 하세요. (1993. 1. 28) 지난 임신년에 좋았던 일, 안 좋았던 일, 여러 가지가 있다. 사회에서는 묵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아니라 좋았든 나빴든 간에 지난 일의 모든 것을 반성하여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것은 이것 때문에 잘못되었고, 그래서 잘 안 되었다고 하는 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혁신해 나가야 한다. 혁신이란 잘못했던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지난 일을 반성하여 잘못된 것을 알아 새롭게 잘해 나가는 것이다. (1993. 1. 28) 생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모든 것을 다 보고 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나중에 다 알게 된다. 사람은 잘못한 일을 시일이 오래 가면 잊어버리지만, 신명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나중에 신명공판에 가면 다 나온다. 그러니 잘해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하고 항상 반성해야 한다. 금년에는 혁신을 해야 한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 된다. 잘못됐다는 것을 아니까 고쳐진다. 잘못을 알기에 두 번 다시 실수를 하지 않는다. 날마다 반성해서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라. 항상 반성해서 잘못된 것을 고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를 항상 생각하면, 이것이 수도인 것이다. 다른 게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다. (1993. 1. 28) 해원상생의 근본원리로 도인을 지도⋅교화해나가야 한다. 해원상생 대도로 우리는 혁신을 해야 한다. 하나하나 한 일을 반성해서 고쳐나가야 한다. 잘못을 알면 죄를 안 짓는다. 알면 고치기 때문이다. 고쳐나가면 된다. 늘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 (1993. 1. 28) 새해를 맞아 지난 임신(1992)년을 반성하여 잘못된 점들은 개혁하고, 잘한 일들은 정진하여 큰 발전을 가져올 혁신의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1993. 2. 4) 금년에는 우리가 모든 것을 개혁하고 혁신하자고 했다. 혁신, 개혁은 반성하는 것이다. 반성이란 지나간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지나간 일을 생각해봐서 ‘잘했다, 나빴다’ 하는 것은 스스로 알 것이다. 잘한 것은 밀고 나가 발전시키고 나쁜 것은 버리고 고쳐나가는 것이 혁신이다. (1993. 4. 1) 사회적으로 도인으로서 나의 잘못을 늘 반성해야 한다. 참으로 과부족이 없는가 늘 반성해야 한다. 그냥 넘어가지 말고 부족한 것이 없는가 매일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그래야 도인 자격을 갖추어 나갈 수 있다. 어렵다면 어려운 것이고, 쉽다면 쉬운 것이다. (1993. 11. 4) 우리는 수도다. 수도에 따라 운수를 받는 것이다. 어떻게 배우느냐? 여러 사람이 눕는 걸 봐도, 내가 볼 땐 잘했다, 잘못했다는 것을 안다. 소리를 질러도 행위자는 몰라도 보는 사람은 잘했다, 잘못했다를 안다. 보고 반성해서 고치게 된다. 깨닫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을 보면 ‘나도 저래야겠구나’, 잘못하면 ‘나도 고쳐야겠다.’ 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자나 노나 일하나 거기서 배우고 깨달을 게 많다. 모든 것에서 배우게 된다. (1994. 5. 16) 다 겪어야 하는 것이다. 설령 누가 나를 나쁘다고 해도 그 사람을 미워할 일이 아니고 반성해야 한다. 내가 뭘 크게 잘못해서 그런 소리를 듣는가 하고 반성해야 한다. 거기서 고쳐진다. 그러면 척이 풀리고 나쁠 게 없다. 그들이 내게 은인이 된다. 겪을 것을 겪어야 복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제님 재세 시에 종도 누가 돼지 한 마리를 잃어버려서 그것을 키운 공을 생각하면 아깝고 화도 났는데, 그것을 상제님께서 “다행으로 알아라. 그것을 잊어버리라. 네가 전생에 남의 돼지를 훔친 그 죄가 없어진 것이다.”(<대순전경>, 6판) 하시지 않았느냐? 다 전생에 맺은 것을 푸는 것이라고 알아야 하고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그 척이 풀어지는 것이다. 뺨을 맞으면 내가 한 것을 척신이 보복한 것이다. 그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전경>에 어떤 나쁜 일을 당하면 먼저 나 자신을 반성하고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하라고 하셨듯이, 모든 것을 해원상생으로 참아 나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해원상생의 원리에서 생활화해 나가야 한다. (1994.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