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자녀 교육을 너무 등한시한다. “학교에 다녀서 뭘 하느냐”란 말이 있다고 한다. 교육을 못 받으면 진실한 사람이 된다기보다 버려진다. 나 혼자 잘 되려고 자식을 버린다면 어떻게 운수를 받겠는가? 배우면 나아진다. 믿어도 배운 사람이 낫다. 배운 사람이 많으면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인정을 받지 못하면 종단을 욕되게 하고 덕화 손상이 된다. (1987. 5. 26)
도가 경위이고 경위가 도리다. 행하고 지녀야 할 도리란 <전경>에 있듯이 바로 삼강오륜이다. 상제님께서도 세상에 삼강오륜이 없으니 천하가 다 병들었다고 하셨다. 사회에서도 사람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정해놓고 교육을 하고 가르쳐 나간다.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을 경위 바르다고 한다. 배운다는 것은 사람의 도리를 하려고 배우는 것이다. 만약 배운 사람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배운 사람이 그러냐?” 하고 비웃는다. 도리를 행하지 않으니까 법을 정한 것이다. 법이 다른 게 아니라 경위다. 상제님께서도 “세무충(世無忠), 세무효(世無孝), 세무열(世無烈)”이라 하셨다. 이것이 삼강(三綱), 강령(綱領)이다. 삼강이 주(主)이고, 오륜은 거기에서 나온 가지이다. 이것이 사라짐으로 해서 천하가 다 병들었다. 상제님께서 이 병을 고치시고자 이 세상에 강림하신 것이다. 이 병을 고치므로 우리 대순에 운수가 있다. <전경>의 원 강령은 삼강오륜의 충효열이다.
이것을 믿기만 하면 안 된다. 잘 알고 그대로 실천하고 일상생활에 생활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도인이 된다는 뜻이다. 제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 되고, 올바른 일을 가르치고, 올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을 도인이라고 한다. 도에서는 도인을 만든다. 도인이 되어야 도통을 받을 수 있고 운수를 받을 수 있다. 잘 지키고 잘 행해야 도인이 된다. 그러려면 무자기가 되어야 하는데 행하지 않고서 운수를 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무자기가 그것 아닌가! 그것을 도덕이라 한다. 사람으로서 행하여야 할 도리를 도덕이라고 한다. 말로만 갖고는 안 된다. 무자기가 되어 완전한 도인이 되면 욕심과 사심이 없어진다. 원래의 본성, 천성(天性), 양심, 원래의 착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래야만 도통 받을 만한 그릇이 만들어지고 갖추어지는 것이다. 그 그릇을 만드는 것이 수도이다. 지금은 그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유리알같이 깨끗해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통해진다. (1989. 2. 12)
이번에 처음으로 큰공부라고 해 보았다. 여기 큰공부를 몇몇이 마치고 나왔는데, 배운 사람이 나은가? 못 배운 사람이 나은가? 공부할 때도 보면 배운 사람이 훨씬 낫다. 신명이 와서 응해주는 것도 그렇다. 무식한 사람보다 배운 사람은 요령이 있다. 안 배운 사람은 잘 못 한다. 신명이 와서 응할 때도 그렇다. (1992. 2. 8)
꼭 유식하고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어도 더 많이 배우고 잘난 사람을 포덕할 수 있다. 선⋅교감이 더 못 배웠지만 글 많이 배운 사람이 듣고 따라온다. 진리에 맞으니까, 이론에 맞으니까 그러는 것이다. 교화하는 데서 생각을 하게 되면 생각이 나오게 되고, 이것들이 모두 이론에 맞게 된다. 이것은 자기가 하는 게 아니다. 상제님께서도 “생각에서 생각이 나온다.”고 말씀하셨다. 포덕을 시키고 교화를 시킬 때 몸과 마음에 배여 생활화시킬 수 있도록 하라. 무엇보다 본인이 잘 이해하고 믿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진리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진리를 이해하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믿다가 떨어지고 다른 데로 가게 된다. 믿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은 충분하게 이해를 못 시켰기 때문이다. 이해를 못 하면 우왕좌왕하는 것이니, 포덕을 하는 것보다도 들어온 한 사람을 떨어지지 않게 잘 이해시키고 가르치도록 하라. (1992. 4. 9)
앞으로 큰공부가 있을 것이다. 큰공부도 시켜보았는데 이거하고 똑같다. 이번 공사에서처럼 기술자, 기능공 같은 아는 사람을 시켜보면 이해가 안 가서 안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이해가 안 가니까 자기네가 배운 대로 하려고 한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무조건 신심(信心) 하나만 가지고서 함께 가면 그게 더 빠르다. 임원들보다 수반들, 수반도 처음 온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빠르다. 그저 좋은 것 하나만 가지고 하니 빠르다. 오래된 사람들은 힘과 기국은 크다. 그러나 빠르지는 못하다. 부산에 있을 때 큰공부를 시켜보았더니, 빠른 사람이 있고 느린 사람이 있었다. 늦어도 누구라도 보름 넘어 삼칠(21)일 안에 다 된다. (1991. 1. 3)
단청하는 것을 보면, 여러분 영(靈)이 어느 정도 통했어요. 그러니까 그걸 긋고 그러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그렇게 못한다. 영이 통하면 그것이 도통이다. 여러분이 그것을 아무렇게나 생각하니까 그렇지, 여러분이 어느 정도 통했기 때문에 일이 되는 것이다. 노인들도 자기 정성으로 해보자고 선을 그으니까 똑같다. 단청을 배웠건 안 배웠건 똑같다. 외수들도 마찬가지다. 배운 것이 없어도 누구라도 하라고 하면 다 했다.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다. (1994. 8. 4)
닦지 못한 인간들의 자존심이 상대를 멸시하며 시비(是非)를 조장할 수 있으므로 내 몸을 바로 잡는 일은 자기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다. 아무리 내가 안다고 해도 여러 사람의 의견만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지식을 높이고 인격을 도야하며 처세의 길을 넓히게 됨이니, 따라서 남을 존중하면 도리어 숭배를 받게 되어 소외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원수의 원을 풀어 은인을 대하듯 하라” 하셨으니 내 몸을 내가 닦기를 힘써 나가려면 반성으로써 날에 날마다 내 몸이 새로워지도록 게을리하지 말아야 곧, 수기(修己)가 되는 것이다.
자고로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말이 있다. 이 뜻은 타인(他人)으로 인해 내가 연성(煉性)된다는 말이니, 이는 내가 모르는 것은 남에게 배워서 깨닫게 됨을 이름이다. <전경>에 “박람박식(博覽博識)이 가장 두렵다” 하셨으니, 남을 다스리려면 먼저 지식을 쌓고 견문이 넓어야 매사에 적응하여 말 없는 가르침이 되어 무언행교(無言行敎)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선악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모든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여 나가면 관용으로써 악도 회복시킬 수 있음이니, 이런 일이 대인(大人)을 배워 행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극기(克己)로써 충고를 고맙게 받아들이면 인덕(人德)을 얻어 대인(大人)의 길이 열려 사람으로 인해 배우게 되고 사람으로 인해 닦아지니, 내 몸 닦음이 곧 가르치는 근본이 되느니라. (1985.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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