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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지(權智)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07-05-04 (금) 20:33 조회 : 3915

 

권지(權智)

 

제1장


1. 류서구(柳瑞九)는 상제의 부친과 친분이 있는 분으로서 상제의 예지(豫知)에 깊이 놀라 상제를 경송하게 되었도다. 상제께서 그의 내왕을 언제나 미리 아시고 주효를 준비한 사실을 부친이 서구에게 알렸으되 그가 믿지 않았도다. 임인년 정월 七일에 상제께서 그가 다시 오는 것을 마당에서 맞으면서 “세전에 공사가 있어 오신 것을 대접하지 못하여 부친에 대한 예가 안 되었나이다”고 말씀하시고 아우 영학으로 하여금 책력의 틈에 끼워 둔 종이쪽지를 가져오게 하여 펼쳐 보이시니 “인일에 인간방에서 사람이 오는데 마당에서 만나게 되니 그는 꼭 류서구였도다.(寅日人來寅艮方 逢場必是柳瑞九)”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도다. 이에 류서구는 놀라 그 후 상제를 경송하게 된 것이니라.


2. 상제께서 가시는 여름의 폭양 길은 언제나 구름이 양산과 같이 태양을 가려 그늘이 지는도다.


3. 상제께서 “제갈량(諸葛亮)이 제단에서 칠일 칠야 동안 공을 드려 동남풍을 불게 하였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라. 공을 드리는 동안 일이 그릇되어 버리면 어찌 하리요” 말씀하시고 곧 동남풍을 일으켜 보였도다.


4.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말하나 내가 천지를 돌려 놓았음을 어찌 알리요”라고 말씀하셨도다.


5. 상제께서 농부들이 九월에 일손 바쁘게 밭을 갈고 보리를 심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들 신고하나 수확이 없으리니 어찌 불쌍치 아니하랴”고 탄식하시는 말씀을 엿듣고 형렬은 결단하고 그 해 보리농사를 짓지 아니하였다.


6. 이듬 해 봄 기후가 순조로와 보리농사가 잘되어 풍년의 징조가 보이는지라. 농부들과 김 보경, 장흥해는 지난 가을에 상제께서 들판을 보시고 보리농사가 실패될 것을 염려하시기에 보리농사를 짓지 아니한 형렬을 비웃으니라. 이것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그것은 신명공사에서 작정된 것인데 어찌 결실하기도 전에 농작을 예기할 수 있으리요” 하시고 종도들의 성급함을 탓하시니라. 五月 五日에 폭우가 쏟아지니라. 보리이삭에 병이 들어 이삭이 마르기 시작하더니 결실이 되지 않는도다. 쌀값이 뛰고 보리 수확이 없게 되자 보경과 농부들이 상제의 말씀을 깨닫고 감복하기만 하였도다.


7. 이 해 七월에 이르러 쌀값이 더욱 뛰고 거기에 농작물마저 심한 충재가 들어 인심이 더욱 사나워지기에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신축년부터 내가 일체의 천지공사를 맡았으니 금년에는 농작물이 잘되게 하리라”고 이르시니라. 이 해에 비가 적절히 내리고 햇볕이 쪼이더니 들판에서는 온통 풍년을 구가하니라.


8.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 “내가 천지공사를 행하면서부터 일체의 아표신(餓莩神)을 천상으로 몰아 올렸으니 이후에는 백성이 기근으로 죽는 일은 없으리라”고 하셨도다.


9. 상제께서 언제나 출타하시려면 먼저 글을 써서 신명에게 치도령(治道令)을 내리시니라. 상제께서 계셨던 하운동은 원래 산중이라 길이 매우 좁고 험하고 수목이 우거져 길에 얽혀 있느니라. 치도령을 내리시면 여름에는 나무에 내린 이슬을 바람이 불어 떨어뜨리고 겨울에는 진흙길이 얼어붙기도 하고 쌓인 눈이 녹기도 하였도다.


10. 최운익(崔雲益)의 아들이 병으로 인해 사경을 헤매이므로 운익이 상제께 달려와서 배알하고 살려주시기를 애걸하니라. 상제 가라사대 “그 병자가 얼굴이 못생김을 일생의 한으로 품었기에 그 영혼이 지금 청국 심양(淸國 瀋陽)에 가서 돌아오지 않으려고 하니 어찌하리요.” 운익이 상제께서 병자를 보신 듯이 말씀하시므로 더욱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굳이 약을 주시기를 애원하니라. 상제께서 마지못해 사물탕(四物湯) 한 첩을 지어 구월음(九月飮)이라 써 주시니라. 운익이 약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니 아들은 벌써 숨을 거뒀도다. 운익이 돌아간 후에 종도들이 구월음의 뜻을 여쭈었더니 가라사대 “九월 장시황어여산하(九月葬始皇於驪山下)라 하니 이것은 살지 못할 것을 표시함이로다. 그 아들이 죽을 사람이지만 만일 약을 굳이 원하다가 얻지 못하고 돌아가면 원한을 품을 것이므로 다만 그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약을 주었노라” 하셨도다.


11. 상제께서 어느 날 경석을 데리고 농암(籠岩)을 떠나 정읍으로 가는 도중에 원평 주막에 들러 지나가는 행인을 불러 술을 사서 권하고 “이 길이 남조선 뱃길이라. 짐을 많이 실어야 떠나리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三十리 되는 곳에 이르러 “대진(大陣)은 일행 三十리라” 하시고 고부 송월리(松月里) 최(崔)씨의 재실에 거주하는 박공우(朴公又)의 집에 유숙하셨도다. 공우와 경석에게 가라사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通精神)이 나오노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형제일지라도 모르는 일이니 또 “나는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서 천하를 대순하다가 삼계의 대권을 갖고 삼계를 개벽하여 선경을 열고 사멸에 빠진 세계 창생들을 건지려고 너의 동방에 순회하던 중 이 땅에 머문 것은 곧 참화 중에 묻힌 무명의 약소민족을 먼저 도와서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주려 하노라, 나를 좇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 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 궁을가(弓乙歌)에 조선강산(朝鮮江山) 명산(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다시 난다”라 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라 동학신자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하리라고 전하니 이는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代先生)이로다”라고 말씀하셨도다.


12. 상제께서 섣달 어느 날 종도들과 함께 동곡으로 가시는데 길이 진흙으로 심히 험하거늘 치도령을 내리시니 질던 길이 곧 굳어지니라. 마른 짚신을 신고 동곡에 가실 수 있었다. 그 당시 쓰신 치도령은 “어재함라산하(御在咸羅山下)의 여섯 글자인 바 상제께서 이것을 불사르셨도다.


13. 상제께서 농암에 머무르시며 공사를 마치시고 그 곳을 떠나려 하실 때에 차경석이 와서 배알하고 “길이 질어서 한 걸음도 걷기 어렵나이다”고 아뢰는도다. 상제께서 양지에 “칙령도로신장 어재순창농암 이우정읍대흥리(喇令道路神將 御在淳昌籠岩 移于井邑大興里)”라 쓰시고 물에 담갔다가 다시 끄집어내어 손으로 짜신 후에 화롯불에 사르시니라. 이 때 갑자기 큰비가 내리다가 그치고 남풍이 불더니 이튿날 땅이 굳어지는도다. 상제께서 새 신발을 신고 경석을 앞장 세우고 정읍에 가셨도다.


14. 그 후에 상제께서 김제 반월리(金堤 半月里) 김준희(金駿熙)의 집에 계셨을 때 전주 이동면 전룡리(全州 伊東面 田龍里)에 사는 이직부의 부친이 상제를 초빙하는도다. 상제께서 그 집에 옮겨가셨는데 그 집 훈장이 상제의 재주를 시험하고자 하는 것을 미리 아셨다. 상제께서 줏대를 갖고 산을 두시며 그 동네 호구와 남녀 인구의 수를 똑바로 맞추시고 “사흘 안에 한 사람이 줄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니라. 그와 직부가 이상히 여겨 동네 호구를 조사하니 一호 一구의 차이도 없었고 사흘 안에 한 사람이 죽었도다.


15. 상제께서 아우 영학(永學)에게 부채 한 개에 학을 그려주시고 “집에 가서 부치되 너는 칠성경(七星經)의 무곡(武曲) 파군(破軍)까지 읽고 또 대학(大學)을 읽으라. 그러면 도에 통하리라”고 이르셨도다. 영학이 돌아가는 길에 정남기의 집에 들르니 그 아들도 있었는데 아들이 부채를 탐내어 빼앗고 주지 않으니라. 영학이 그 부채의 내용 이야기를 말하니 아들은 더욱 호기심을 일으켜 주지 않으니 하는 수 없이 영학은 빼앗기고 집에 돌아왔도다. 아들은 부채를 부치고 대학의 몇 편을 읽지도 않는데 신력이 통하여 물을 뿌려 비를 내리게 하며 신명을 부리게 되는지라. 남기는 기뻐하여 자기 아들로 하여금 상제의 도력을 빼앗고자 아들과 함께 하운동에 가는데 때마침 상제께서 우묵골(宇,谷)로부터 하운동에 오시는 길이었도다. 남기의 아들이 상제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겁을 먹고 도망가거늘 남기가 붙들고 와서 상제께 배알하니 상제께서 그의 속셈을 꿰뚫고 남기의 무의함을 꾸짖으시며 그 아들의 신력(神力)을 다 거두신 후에 돌려보내셨도다.


16. 상제께서 전주 용두치(龍頭峙)에서 우사(雨師)를 불러 비를 내리는 공사를 보셨도다. 이치복이 전주 김보경을 찾고 상제를 배알하니 상제께서 가라사대 “이런 때에 나이 적은 사람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절을 받느니라.” 치복이 상제께 사배를 올리니 상제께서 “금년에 비가 극히 적으리라. 만일 비가 내리지 않으면 천지에 동과혈(冬瓜穴)이 말라죽으리라. 그러므로 서양으로부터 우사를 불러서 비를 주게 하리라” 말씀하시고 술상을 차리고 치복에게 술 두 잔을 주시며 한 잔을 요강에 부으셨도다.


17. 백남신의 친족인 백용안(白龍安)이 관부로부터 술 도매의 경영권을 얻으므로써 전주 부중에 있는 수백 개의 작은 주막이 폐지하게 되니라. 이 때 상제께서 용두치 김주보의 주막에서 그의 처가 가슴을 치면서 “다른 벌이는 없고 겨우 술장사하여 여러 식구가 살아 왔는데 이제 이것마저 폐지되니 우리 식구들은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통곡하는 울분의 소리를 듣고 가엾게 여겨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어찌 남장군만 있으랴. 여장군도 있다” 하시고 종이에 여장군(女將軍)이라 써서 불사르시니 그 아내가 갑자기 기운을 얻고 밖으로 뛰어나가 소리를 지르는도다. 순식간에 주모들이 모여 백용안의 집을 급습하니 형세가 험악하게 되니라. 이에 당황한 나머지 그는 주모들 앞에서 사과하고 도매주점을 폐지할 것을 약속하니 주모들이 흩어졌도다. 용안은 곧 주점을 그만두었도다.


18. 상제께서 김덕찬, 김준찬 등 몇 종도를 데리고 용두리에서 공사를 행하셨도다. 이곳에 드나드는 노름꾼들이 돈 팔십 냥을 가지고 저희들끼리 윷판을 벌리기에 상제께서 저희들의 속심을 꿰뚫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저 사람들이 우리 일행 중에 돈이 있음을 알고 빼앗으려 하나니 이 일로써 해원되니라” 하시고 돈 五十냥을 놓고 윷을 치시는데 순식간에 八十냥을 따시니라. 품삯이라 하시며 五푼만을 남기고 나머지 돈을 모두 저희들에게 주며 말씀하셨도다. “이것은 모두 방탕한 자의 일이니 속히 집으로 돌아가서 직업에 힘쓰라.” 저희들이 경복하여 허둥지둥 돌아가니라. 종도들이 상제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윷이 되는 법을 궁금히 여기는 것을 알아차리시고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던지는 법을 일정하게 하면 그렇게 되나니 이것도 또한 일심이라” 하셨도다.


19. 박공우가 한때 일진회의 한 간부였으나 상제를 따른 후의 어느 날 가만히 일진회 사무소에 일을 보고 돌아왔는데 상제께서 문득 공우에게 이르시기를 “한 몸으로 두 마음을 품은 자는 그 몸이 찢어지리니 주의하라” 하시기에 공우는 놀라며 일진회와의 관계를 아주 끊고 숨기는 일을 하지 않으니라.


20. 상제께서 어느 날 공우를 데리시고 태인 새울에서 백암리로 가시는 도중에 문득 관운장(關雲長)의 형모로 변하여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내 얼굴이 관운장과 같으냐” 하시니 공우가 놀라며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하거늘 상제께서 세 번을 거듭 물으시니 공우는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관운장과 흡사하나이다”고 아뢰니 곧 본 얼굴로 회복하시고 김경학의 집에 이르러 공사를 행하셨도다.


21. 상제께서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主宰)하여 선천의 모든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새 운수를 열어 선경을 만들리라”고 종도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하셨도다. 그 때가 더딘 것에 종도들이 한탄하면서 하루 바삐 상제께서 개벽을 이룩하시기만 기다리는도다.


22. 상제께서 청도원(淸道院)에서 동곡에 돌아와 계시던 어느 날 “풍,운,우,로,상,설,뇌,전(風雲雨露霜雪雷電)을 이루기는 쉬우나 오직 눈이 내린 뒤에 비를 내리고 비를 내린 뒤에 서리를 오게 하기는 천지의 조화로써도 어려운 법이라” 말씀하시고 다시 “내가 오늘밤에 이와 같이 행하리라” 이르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과연 눈이 내린 뒤에 비가 오고 비가 개이자 서리가 내렸도다


23. 상제께서 어느 해 여름에 김형렬의 집에 계실 때 어느 날 밤에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강감찬은 벼락칼을 잇느라 욕보는구나. 어디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며 좌우 손으로 좌우 무릎을 번갈아 치시며 “좋다 좋다” 하시니 제비봉(帝妃峰)에서 번개가 일어나 수리개봉(水利開峰)에 떨어지고 또 수리개봉에서 번개가 일어나 제비봉에 떨어지니라. 이렇게 여러 번 되풀이 된 후에 “그만하면 쓰겠다” 하시고 좌우 손을 멈추시니 번개도 따라 그치는지라. 이튿날 종도들이 제비봉과 수리개봉에 올라가서 살펴보니 번개가 떨어진 곳곳에 수십 장 사이의 초목은 껍질이 벗겨지고 타죽어 있었도다.


24. 신원일이 건재약국을 차리고 약재를 사려고 공주 감영으로 가는 길에 김보경의 집에 들러서 상제께 배알하였도다. 이 자리에서 그는 여러 이야기 끝에 “길이 질어서 행로에 불편을 심하게 받았노라”고 여쭈니라. 상제께서 웃으시고 아무 말씀이 없었는데 원일이 이튿날 아침 길에 나서니 길이 얼어붙은 것을 보고 놀라면서도 기뻐하였느니라.

 

25. 상제께서 농암에 계실 때에 황응종과 신경수가 와서 배알하고 “눈이 길에 가득히 쌓여 행인이 크게 곤란을 받나이다”고 아뢰이니 상제께서 장근(壯根)으로 하여금 감주를 만들게 하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잡수시니라. 쌀쌀하던 날씨가 별안간 풀리면서 땅의 눈이 녹아서 걷기가 편하여졌도다.


26. 한겨울에 상제께서 불가지 김성국의 집에 계셨도다. 김덕찬과 김성국이 꿩이 많이 날아 와서 밭에 앉기에 그물을 치고 꿩잡이를 하였는데 이것을 상제께서 보시고 “너희들은 잡는 공부를 하라. 나는 살릴 공부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상하게도 그 많은 꿩이 한 마리도 그물에 걸리지 아니하니라.


27. 상제께서 약방에 계시던 겨울 어느 날 이른 아침에 해가 앞산 봉우리에 반쯤 떠오르는 것을 보시고 종도들에게 말씀하시니라. “이제 난국에 제하여 태양을 멈추는 권능을 갖지 못하고 어찌 세태를 안정시킬 뜻을 품으랴. 내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고 담배를 물에 축여서 세 대를 연달아 피우시니 떠오르던 해가 산머리를 솟지 못하는지라. 그리고 나서 상제께서 웃으며 담뱃대를 땅에 던지시니 그제야 멈췄던 해가 솟았도다.


28. 상제께서 갑진년 二월에 굴치(屈峙)에 계실 때 영학에게 대학을 읽으라 명하셨으되 이를 듣지 않고 그는 황주죽루기(黃州竹樓記)와 엄자능묘기(嚴子陵廟記)를 읽으니라. 상제께서 “대(竹)는 죽을 때 바꾸어 가는 말이요, 묘기(廟記)는 제문이므로 머지 않아 영학은 죽을 것이라” 하시며 이도삼을 불러 시 한귀를 영학에게 전하게 하시니 이것이 곧 ‘골폭 사장 전유초(骨暴沙場纏有草) 혼반 고국 조무인(魂返故國弔無人)’이니라.

 

29. 처음부터 영학(永學)은 도술을 배우기를 원했으나 상제께서는 그것을 원치 말고 대학을 읽어라 하셨는데도 명을 어기고 술서를 공부하기에 시(詩)를 보내어 깨닫게 했으나 상제의 말씀을 듣지 않더니 기어코 영학이 죽게 되었니라. 상제께서 내림하셔서 영학의 입에 엄지손가락을 대시고 “이 손가락을 떼면 곧 죽을 것이니 뜻에 있는 대로 유언하라” 하시니 영학이 부모에게 할 말을 모두 마친 후에 엄지손가락을 떼시니 곧 사망하니라.


30. 갑진년에 김덕찬이 모친상을 입고 장례를 지내려고 전주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용두치(龍頭峙) 주막에서 상제를 배알하니 가라사대 “오늘 장사는 못 지내리니 파의하라” 하셨도다. 덕찬이 이를 듣지 않고 돌아가서 장례를 그대로 행하여 지정한 땅을 파니 큰 의혈(蟻穴)이니라. 다시 다른 곳을 파니 그곳도 역시 마찬가지라. 덕찬이 그제서야 상제께서 가르치심의 어김을 뉘우치고 부득이 토롱(土壟)을 하였도다.


31. 상제께서 섣달 어느 날 종도들을 이끌고 모악산 용안대(龍眼坮)에서 여러 날을 머무르셨도다. 마침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교통이 두절되고 따라서 양식이 두 끼니의 분량만이 남으니라. 상제께서 종도들이 서로 걱정하는 것을 듣고 남은 양식으로 식혜를 짓게 하시니 종도들은 부족한 양식을 털어서 식혜를 지으면 당장 굶게 되리라고 걱정하면서도 식혜를 지어 올렸도다. 상제께서 종도들과 함께 나누어 잡수시는데 눈이 멈추고 일기가 화창하여 쌓인 눈도 경각에 다 녹고 길도 틔어 종도들과 함께 돌아오셨도다.


32. 하루는 원평(院坪)에서 음식을 드시고 여러 사람을 향하여 외쳐 말씀하시기를 “이제 곧 우박이 올 터이니 장독 덮개를 새끼로 잘 얽어 놓아라” 하시니 여러 사람은 무심히 들었으나 오직 최명옥(崔明玉)만이 말씀대로 행하였더니 과연 두어 시간 후에 큰 우박이 내려 여러 집 장독이 모두 깨어졌도다.


33. 천도교 손병희(孫秉熙)가 호남일대를 순회하고자 전주에 내려와서 머물었도다. 상제께서 공우에게 “네가 전주에 가서 손병희를 돌려보내고 오라. 그는 사설로 교도를 유혹하여 그 피폐가 커지니 그의 순회가 옳지 않다”고 분부를 내리셨도다. 이에 그가 복명하였으되 이튿날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이 계시지 않으므로 이상히 여겼느니라. 며칠 후에 손병희는 예정한 순회를 중지하고 경성으로 되돌아갔도다.


제 2장


1. 박공우의 아내가 물을 긷다가 엎어져서 허리와 다리를 다쳐 기동치 못하고 누워 있거늘 공우가 매우 근심하다가 상제가 계신 곳을 향하여 자기의 아내를 도와주십사고 지성으로 심고하였더니 그의 처가 곧 나아서 일어나느니라. 그 후 공우가 상제께 배알하니 웃으며 가라사대 “내환으로 얼마나 염려하였느냐” 하시니라. 또 박공우가 큰 돌을 들다가 허리를 상하여 고생하면서도 상제께 고하지 않았더니 하루는 상제를 모시고 길을 가는데 갑자기 노하여 말씀하시기를 “너의 허리를 베어 버리리라” 하시더니 곧 요통이 나았도다.


2. 상제께서 양지에 글을 쓰시면서 공사를 보시던 중에 김보경을 불러 “동쪽에 별이 나타났느냐 보아라” 하시니 그가 밖으로 나갔다 들어와서 “검은 구름이 가득히 하늘을 덮어서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창문을 열고 동천을 향하여 헛기침을 하시니 구름이 흩어지고 별이 나타나는도다.


3. 종도 공우가 상제를 모시고 신경수의 집에 머물었느니라. 공우는 밤에 잠자리에서 사람 수십 명이 빛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상제께서 계신 문 밖의 뜰에서 배례하느니라. 이에 놀라서 공우는 상제의 등뒤에 숨었도다. 아침에 상제께서 꿈 이야기를 물으시거늘 공우가 그대로 아뢰니 다시 가라사대 “그들이 천상 벽악사자(天上霹惡使者)이니라” 하셨도다.


4. 공우가 상제를 좇은 후로부터 순유에 자주 시종하였도다. 그는 어디서든지 머무시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하실 때는 밤이면 달무리, 낮이면 햇무리가 나타나는 것을 증험하였으므로 언제든지 햇무리나 달무리만 나타나면 출입하실 줄 알고 먼저 신발과 행장을 단속하여 명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반드시 불러 길을 떠나자 하셨도다. 대저 상제께서는 어디를 가시던지 미리 말씀하신 일이 없었도다.


5. 상제께서 김익찬(金益贊)을 데리고 전주 세천(細川)을 지나실 때 일본인 포수가 냇물 위에 앉아 있는 기러기 떼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차마 보지 못하겠노라” 하시고 왼발로 땅을 한 번 구르시고 그 자리에 서시니라. 그 찰나에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지라. 그 뒤에 상제께서 발을 옮기시더니 그제야 총소리가 들렸도다.


6. 상제께서 불가지로부터 전주로 향하여 가시는 도중에 동남쪽부터 큰 비가 몰려오기에 길 복판에 흙을 파서 침을 뱉고 흙을 덮으시는도다. 비가 그 자리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더니 한 갈래는 동쪽으로 또 한 갈래는 서쪽으로 향하여 몰려가는도다.


7. 동리 사람들이 상제를 배알하고 오늘은 단오절이오니 학선암(學仙庵)에 가서 소풍하시기를 청하거늘 상제께서 응락하시고 자현(自賢)을 데리고 가시다가 도중에서 폭우가 쏟아지려고 하는지라. 사람들이 달음박질하여 비를 피하려고 하나 상제께서 자현을 불러 “천천히 갈지어다”고 이르시고 노방에 앉으셔서 담배를 피우시고 몰려오는 구름 쪽을 향하여 담배연기를 뿜으셨도다. 그리고 자리를 뜨시며 천천히 걸어 학선암에 이르시니 곧 비가 억세게 내리기 시작하였도다.


8. 김경학이 일찌기 동학에 가입하여 삼 개월 동안 시천주의 수련을 하던 중에 어느 날 꿈에 천상에 올라 상제를 뵈온 일이 있었노라. 상제께서 어느 날 “네 평생에 제일 좋은 꿈을 꾼 것을 기억하느냐” 하시니-- 경학이 상제를 천상에서 뵈옵던 꿈을 아뢰었도다. 그리고 그는 상제를 쳐다보니 상제의 지금 형모가 바로 그 때 뵈옵던 상제의 형모이신 것을 깨달으니라.


9. 천문을 보시려면 대체로 구름으로 하늘을 덮고 성수를 하나씩 나타나게 하여 종도로 하여금 살피게 하시기도 하셨도다.


10. 상제께서 정미년에 와룡리 황응종의 집에 머물고 계셨도다. 상제께서 응종의 딸에게 앞마당에 볏짚을 깔고 청수를 올리라 하시니 그 딸이 곧 청수를 동이에 넣어 올렸더니 갑자기 뇌성 벽력이 크게 일어나며 폭우가 억수같이 쏟아졌으나 청수동이를 놓은 다섯자 가량의 둘레에는 한 방울의 빗물도 없었도다.


11. 상제께서 와룡리 황응종의 집에 계실 때 어느 날 담뱃대를 들어 태양을 향하여 돌리시면 구름이 해를 가리기도 하고 걷히기도 하여 구름을 자유자재로 좌우하셨도다.


12. 황응종의 아들이 병으로 위급하게 되었기에 응종이 청수를 떠놓고 멀리서 상제가 계신 곳을 향하여 구하여 주실 것을 두 손을 모아 발원하였더니 아들의 병세가 나으니라. 이튿날 응종이 동곡 약방으로 가서 상제께 배알하니 가라사대 “내가 어제 구름 속에서 내려다보니 네가 손을 모으고 있었으니 무슨 연고이냐”고 물으시므로 응종이 사유를 자세히 아뢰었더니 상제께서 웃으셨도다.


13. 상제께서 황응종, 김갑칠을 데리고 원평 앞 다리를 지나려고 하시는데 저편에서 말을 타고 세 사람이 오는지라. 이것을 보시고 왼발로 길바닥을 한 번 구르고 다리 머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서셨도다. 달려오던 말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으니 세 사람이 온갖 힘을 다 쓰나 말은 꼼짝달싹하지 않으므로 그들이 이상히 생각하느니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사방을 둘러보다가 다리를 건너와서 상제께 절하고 “길을 좀 비켜주십사”고 청하기에 상제께서 웃으시며 한쪽으로 비켜서시니 그제야 말굽이 떨어지고 그들은 오던 길을 갔도다.


14. 상제께서 종도들을 데리고 순창 피노리 주막에 머무르셨다가 태인 백암리로 가시는 도중에 폭우가 계속되었으나 한 방울의 비도 맞지 않으셨도다.


15. 상제께서 五월에 태인 백암리로 가실 때 김경학의 집에서 불이 나서 바람을 타기 시작하여 화재가 위험하게 되니라. 상제께서 “이 불을 끄지 않으면 동리가 위태로우니라”고 말씀하시고 크게 바람을 일으켜 불을 끄시니라. 경학은 바람으로써 불을 끄는 법도 있다면서 탄복하였도다.


16. 김명칠(金明七)은 태인 백암리에 사는 종도인데 산비탈에 땅을 개간하여 거름을 주고 담배를 심어 가꾸었도다. 하루는 번개가 치고 비가 세차게 퍼붓느니라. 비탈진 산전에 거름을 준 후라 억수가 내리면 거름은 물론 밭두둑까지 사태가 나는 것이 상례이기에 명칠이 가슴을 치며 “내 농사는 이것뿐인데 이 억수로 버리게 되었으니 어찌 살랴”고 울음을 터뜨렸도다. 상제께서 긍휼히 여겨 “내가 수재를 면케 하리니 근심 걱정하지 말지어다”고 이르시니 내리던 비가 개는지라. 명칠이 산전에 뛰어 올라가 보니 다른 사람의 밭은 모두 사태가 났으나 자기 밭만은 조금도 피해가 없었도다. 명칠은 새삼스럽게 상제를 공경하는 마음을 게을리 하지 않았느니라.


17. 六월 중복날 상제께서 대흥리 부근 접지리(接芝里) 마을에서 경석을 비롯하여 여러 종도들을 만나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중복인 오늘에 뇌성이 울리지 않으면 농작물에 충재의 해가 있으리라.” 날이 저물도록 우레 소리가 없기에 상제께서 하늘을 향하여 “어찌 생민의 재해를 이렇게도 좋아하느뇨”고 꾸짖으시고 종도에게 마른 짚 한 개만 가져오게 하시고 그것을 무명지에 맞추어 잘라서 화롯불에 꽂고 다 태우시니라. 갑자기 번개가 북쪽에서만 번쩍이니 다시 상제께서 “북쪽 사람만 살고 타 곳 사람은 죽어야 옳으냐”고 하늘을 향하여 꾸짖는 듯이 소리를 치시니 사방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쳤도다.


18. 한여름에 정읍의 버들리에서 젊은 여자가 범에게 물려 갔는데 이도삼이 정읍 수통목에 계시는 상제를 찾아뵈옵고 그 일을 아뢰니라. 상제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공우에게 “하늘에 좀성이 나타났는가 보라” 하시니 공우가 밖에 나갔다 들어와서 나타나 있음을 아뢰니 상제께서 베고 계시던 목침으로 마룻장을 치시며 “좀성아, 어찌 무고히 사람을 해하느뇨”고 꾸짖으셨도다. 이튿날에 그 여자가 몸에 조그마한 상처만을 입고 살아 돌아왔느니라.


19. 가뭄이 심할 때에 비를 내리게 하시고 청수동이에 소변을 조금 타서 오곡을 잘 되게 하시고 충재가 있을 때에 청수동이에 고춧가루를 풀어 넣고 충재를 없앴도다.


20. 정성원(鄭性元)이 동곡 이장으로서 세금을 수납하다가 뜻하지 않게 수천 냥을 축내었던 바 무신년이 되어 관부로부터 빗발치듯이 독촉하기에 마음의 갑갑함을 풀 길이 없어 술에 진탕 취해서 “내가 국세를 먹었으니 내 배를 가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온 동리를 헤매었다. 상제께서 그 고함을 듣고 그를 불러놓고 “너무 염려하지 말라. 장차 무사하게 되리라”고 무마하셨도다. 과연 무기 세금(戊己稅金)이 면제되었도다.


21. 상제께서 신원일을 데리고 태인 관왕묘 제원(關王廟祭員) 신경언(辛敬彦)의 집에 이르러 머물고 계실 때 그와 그의 가족에게 가라사대 “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받은 극진한 공대의 보답으로 공사 때에 반드시 진력함이 가하리로다” 하시고 양지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경언은 처음 보는 일이므로 괴이하게 생각하였도다. 이튿날 경언과 다른 제원이 관묘에 봉심할 때 관운장의 삼각수 한 갈래가 떨어져 간 곳이 없으므로 제원들은 괴상하게 여겼으되 경언은 상제께서 행하신 일이라 생각하고 공사에 진력하기 위하여 비록 초상으로도 그 힘씀을 나타내는 것이라 깨달았도다.


22. 상제께서 공사를 행하실 때나 어느 곳을 정하고 머무실 때에 반드시 종도들에게 정심할 것을 이르셨도다. 방심하는 자에게 마음을 꿰뚫어보신 듯이 일깨우고 때로는 상제께서 주무시는 틈을 타서 방심하는 자에게 마음을 통찰하신 듯이 깨우쳐 주고 방심을 거두게 하시니라.


23. 종도들이 태좌(胎座)법으로 둘러앉아 있을 때는 언제나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였느니라. 상제께서 벽을 향하여 누우셔서 주무실 때에도 종도들의 움직임을 꾸짖으시니 종도들은 그 밝으심이 자고 깨심과 친히 보고 안 보심이나 또한 멀고 가까움이 없음을 깨닫고 더욱 심신의 연마에 힘썼도다.


24. 박공우가 상제의 명을 받들어 각처를 순회하다가 어느 곳에서 상제를 믿지 않고 비방하는 것을 듣고 돌아와서 상제께 아뢰니 상제께서 미리 알고 “어디서 무슨 부족한 일을 보고 당하여도 큰 일에 낭패될 일만 아니면 항상 남을 좋게 말하기를 힘쓰라”고 타이르셨도다.


25. 상제께서 추운 겨울 어느 날 창조의 집에 오셔서 벽력표(霹靂票)를 땅에 묻으시니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천지를 진동하니라. 이튿날 상제께서 동곡 약방으로 행차하셨도다.


26. 상제께서 일주일 동안 계속 코피를 흘리시더니 갑칠에게 관을 만들게 하고 감주 한 그릇을 잡수시니 곧 원기를 회복하셨도다. 이 때에 광찬과 갑칠의 사이에 생긴 갈등을 상제께 아뢰니 벌써 알고 계시니라.


27. 상제께서 어느 날 말씀하시되 “너는 나로 하여금 오래 살기를 바라는도다” 하시고 글 한 수를 외우셨도다.


稚子哭問母何之 爲道靑山採藥遲


日落西山人不見 更將何說答啼兒


또 다시 남원(南原) 양진사(楊進士)의 만사를 외워주시니 다음과 같으니라.


詩中李白酒中伶 一去靑山盡寂寥


又有江南楊進士 ,,芳草雨蕭蕭


28. 상제께서 신경수의 집에서 공사를 보시고 계실 때 시좌하고 있던 윈일에게 “네가 동천에 붉은 옷을 입고 구름 속에 앉은 사람에게 네 번 절한 일이 있었는데 기억이 있느냐”고 회상을 촉구하시더니 원일이 문득 깨닫고 일어나 상제께 네 번 절하니 옆에 앉아 있던 종도들이 까닭을 모르고 물으니라. 그는 옷깃을 다시 여미고 정중히 앉아 이야기하되 “수년 전에 갑자기 병이 들어 사경에 빠져 정신이 황홀하여지는데 어떤 사람이 사인교를 타고 가다가 나를 보고 네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문밖에 나가서 동쪽 하늘을 바라보면 구름 속에 붉은 옷을 입은 분이 앉아 계시리니 그 분에게 절을 사배하라. 그러면 너의 병이 나으리라고 이르기에 그대로 행하였더니 병이 나았다”고 하니라.


29. 김경학이 무신년 五월에 고부 와룡리 문공신의 집에 가서 상제를 뵈오니 상제로부터 “내일 일찍 태인 살포정에서 만나자”고 분부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이튿날 조반 후에 살포정에 이르니 그 주막에서 행객 두 사람이 싸우고 있고 상제께서는 큰길가의 높은 언덕에 돌아앉아 계시기에 올라가 인사를 드리니 인사만 받으시고 여전히 돌아앉으신 채 언짢게 계시는도다. 그는 까닭을 모르고 송구한 마음으로 모시고 서 있노라니 잠시 후에 상제께서 싸우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만두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싸움을 그치고 제 길을 가는지라. 그 때에야 경학이 “어떤 사람들이 싸웠나이까”고 여쭈어 보았더니 상제께서 “우리 겨레에서 정 감(鄭 堪)을 없앴는데도 세상에서 정 감의 노래가 사라지지 아니하기에 혹시 이(李)씨가 정(鄭)씨의 화를 받을까 염려스러워 이제 그 살을 풀고자 이씨의 기운을 돋우고 정씨의 기운을 꺾는 공사를 보았노라” 일러주시니라.


30. 이 해 여름에 경석이 상제를 모셨도다. 이 때 종도들이 악사를 불러 가야금을 타게 하고 즐겁게 놀고 있었노라. 이것을 말리시면서 상제께서 가라사대 “내가 있는 곳에서 비록 사소한 일이라도 헛된 일을 못하느니라. 저 하늘을 보라” 하시니 구름도 같은 기운이 종도들이 놀고 있는 모양을 짓고 중천에 떠 있었도다.


31. 상제께서 무신년 十월 김낙범을 시켜 쌀 스무 말을 깨끗하게 찧어서 약방에 저장하게 하셨는데 형렬이 쌀이 부족하여 여러 사람의 아침밥을 지어줄 수 없어서 갑칠을 시켜 약방에 둔 쌀 중에서 반 말을 갈라내어 조반을 지었더니 상제께서 벌써 아시고 형렬과 갑칠을 꾸짖으셨도다.


32. 이 해 겨울에 김덕찬이 아들의 혼사를 보았도다. 혼인날에 앞서 여러 친지들이 여러 가지로 부조하는 것을 보시고 상제께서는 결혼날의 날씨를 부조하셨도다. 이 해 겨울은 몹시 춥고 날씨가 고르지 못하였으므로 덕찬이 크게 염려하였으나 혼삿날은 봄과 같이 따뜻하므로 마음을 놓으니라. 여러 사람이 “상제의 부조를 받은 혼삿날이라”고 칭송하였도다.


33. 상제께서 계신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실 때에는 때를 가리지 않고 반드시 구름 기둥이 동구(洞口) 좌우에 깃대와 같이 높이 뻗쳐서 여덟 팔자형을 이루는 것을 종도들이 보고 아뢰이니 “이는 장문(將門)이라”일러주시니라.


34. 차경석이 어느 때 정읍 고부인이 안질로 고생하고 자기 아들 희남(熙南)이 앓아 누운 것을 상제께 알리려 동곡에 아우 윤경을 보내니 마을 입구에 김자현,김광찬 등 십여 명이 상제로부터 차윤경이 대흥리에서 나를 찾아오리라는 말씀을 듣고 마중을 나와 그를 맞았도다.


35. 이 때에 오랫동안 가물었도다. 상제께서 갑칠에게 청수 한 동이를 길어오게 하신 후 일러 말씀하시기를 “아래와 웃옷을 벗고 물동이 앞에 합장하고 서 있어라 서양으로부터 우사를 불러와서 만인의 갈망을 풀어주리라.” 갑칠이 말씀대로 옷을 벗고 동이 앞에 합장하여 서니 문득 검은 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큰비가 내리니라. 이 때 상제께서 갑칠에게 “청수를 쏟고 옷을 입어라” 하시고 종도들에게 이르시니라. “너희들도 지성을 다하여 수련을 쌓으면 모든 일이 뜻대로 되리라.” 류찬명이 “이런 일은 세상 사람이 다 모르니 원컨대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널리 깨닫게 하여 주소서” 하고 아뢰었도다.


36. 상제께서 종도들이 풍,우,한,서(風雨寒暑)에 따라 불편을 아뢸 때마다 천기를 돌려서 편의를 보아주시니라. 하루는 상제께서 “너희들이 이후로는 추워도 춥다 하지 말고 더워도 덥다 하지 말고 비나 눈이 내려도 불평하지 말라. 천지에서 쓸데가 있어서 하는 일이니 항상 말썽을 부리면 역천이 되나니라”고 말씀하셨도다.


37. 상제께서 하루는 종도들에게 “진묵(震,)이 천상에 올라가서 온갖 묘법을 배워 내려 인세에 그것을 베풀고자 하였으나 김봉곡(金鳳谷)에게 참혹히 죽은 후에 원(,)을 품고 동양의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화 계발에 역사하였나니라. 이제 그를 해원시켜 고국(故國)으로 데려와서 선경(仙境) 건설에 역사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38. 상제께서 김형렬을 불러 물으셨도다. “네가 나의 사무를 담당하겠느냐.” 형렬이 “재질이 둔박하와 감당치 못할까 하나이다”고 대답하는 것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꾸짖으시니 형렬이 대하여 “가르치심에 힘입어 담당하겠나이다”고 여쭈니 상제께서 “무한 유사지 불명(無恨有司之不明)하라. 마속(馬謖)은 공명(孔明)의 친우로되 처사를 잘못하므로써 공명이 휘루참지(揮淚斬之)하였으니 삼가할지어다”고 일러주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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