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원성취 게시판
2024. 11. 30
소원성취 게시판은
우리의 의도를 담고 있는 목표 게시판입니다.
이것을 일상에서 활용하면 큰 효용을 거둘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생각과 의도를 이미 현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건물을 짓기 전에 청사진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의도는 보이지 않지만,
소원성취 게시판에는 그것이 물형의 형태로 이미 나타나 있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현현(顯現)의 전 단계가 됩니다.
그래서 그것은 막강한 효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게시판의 오른쪽에는 장기 목표를 설정하고
왼쪽에는 단기 목표를 설정하세요.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아세요.
비물리적 세계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음을 이해하세요.
그것은 이미 비물리적 영역에 동시에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동시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성이란 ‘시간은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동시성(Synchronicity)은 칼 융(Carl Jung)이 처음으로 제기한 개념인데,
우연한 사건들이 의미 있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합니다.
융은 동시성을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로 정의하며,
이는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닌,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심리적 또는 영적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개인의 심리적 상태와 외부 세계 간의 깊은 연결을 반영하며,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나 깨달음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동시성은 그 사람을 생각하는 데 전화가 온다거나,
거리에서 갑자기 생각난 친구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다거나,
곰곰이 생각한 주제와 관련된 간판, 뉴스, 책, 영화를 접한다거나,
꿈에서 본 장면을 현실에서 접한다거나,
우연히 본 시계에 동일한 숫자가 반복해 보인다거나, 등등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를 말합니다.
동시성을 찾는 습관을 기르세요.
동시성은 신명이 우리에게 말하는 방식입니다.
시계에서 11:11, 3:33, 5:55 등
연속되는 숫자를 보게 되면 기억하세요.
그것은 신명이나 영적 가이드가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하는 것임을.
그리고 무엇이 정확한 그 시간에 시계를 보게 했는지 생각해보세요.
그것은 우리 내면의 영(靈)입니다.
우리는 타는 자동차가 아니고,
입고 있는 옷이 아니며,
내가 운영하는 육체가 아니고,
내가 쓰는 마음이 아니며,
나는 나(I AM)입니다.
나는 영(靈)입니다.
영이 나고, 영이 신(神)이며, 신이 도(道)입니다.
그러니 나는 도입니다.
이것이 <요람>에 도즉아 아즉도(道卽我我卽道)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옷이 아니라,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 아니라 영으로 사세요.
영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며, 듣고, 말하며, 행동하세요.
이것이 영의 생활방식이고,
영의 생활방식이 동시성의 생활방식이며,
동시성의 생활방식이 기적의 생활방식입니다.
매 순간 동시성을 체험하는 것이
매 순간 기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일은
매 순간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소원성취 게시판은 영어로 비전 보드(vision board)라 합니다.
비전 보드에 대한 정보는 책, <시크릿>에 나와 있습니다.
“비전 보드: 목표를 붙여두는 게시판
비전 보드에 원하는 것들의 그림과 바라는 인생의 모습을 붙여두고
상상에 불을 지피는 것도 좋다.
존 아사라프가 했듯이 비전 보드를
매일 눈길이 닿는 곳에 놓아두어라.
이미 얻었을 때의 감정을 느껴라.
받아서 감사함을 느끼고 나면
그림을 떼어내고 새로운 그림을 붙여도 좋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끌어당김의 법칙을 알려주는 좋은 방법이다.
비전 보드가 부모와 교사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면 한다.
‘시크릿’ 웹사이트 포럼에 가입한 어떤 사람은
자기 비전 보드에 시크릿 DVD 사진을 붙여놓았다.
그 사람은 <시크릿>을 보았지만 DVD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가 비전 보드를 만들고 난 지 이틀 후,
나는 ‘시크릿 포럼’에 공지를 올려
처음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 열 명에게
DVD를 나누어주겠다는 내용을 써야겠다고 맘먹었다.
그 열 사람 가운데 당연히 그 남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비전 보드에 사진을 붙인 지 이틀 만에 DVD를 받았다.
<시크릿> DVD든 집이든,
창조하여 받을 때 누리는 즐거움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또 다른 예로, 내 어머니가 새집을 사려고 할 때였다.
어머니 외에도 몇 사람이 그 집을 사겠다고 제안했었다.
어머니는 ‘시크릿’을 활용하여 집을 얻기로 결심했다.
앉아서 자신의 이름과 새집의 주소를 쓰고 또 썼다.
그 주소가 마치 자신의 주소처럼 느껴질 때까지 계속 반복했다.
그러고는 그 집에 가구를 모조리 배치하는 상상을 했다.
이렇게 하기를 몇 시간.
전화벨이 울리더니 어머니로 결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너무나 기뻤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자기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원하는 걸 결정하라.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어라.
당신이 그걸 얻을 자격이 있고 얻을 수 있다고 믿어라.
그런 뒤에 날마다 몇 분간 눈을 감고 원하는 것을 이미 얻었을 때,
소망이 이루어졌을 때의 감정을 상상하라.
그런 다음에는 감사한 일들에 집중하면서 그 감정을 즐겨라.
그러고 나서 잊어버리고 우주에 맡겨라.
우주가 알아서 당신에게 가져다주리라고 믿어라.’ - 잭 캔필드”
<시크릿> pp.115-116.
비전 보드는 강력한 창조의 도구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활용한다면
우리 현실에 우리가 원하는 소망을
매우 쉽게 빠르게 현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현현(顯現)의 개념을 잘 이해하여야 합니다.
현현은 한 차원 높은 세상에 그려진 이상을
더 낮은 차원에 나타내고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래 앞의 현(顯)은 음(陰)이고 뒤의 현(現)은 양(陽)입니다.
현(顯)은 내용을 나타내는 것이고
현(現)은 형식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타나고 드러나는 것이 현현입니다.
현현은 “안에서와같이 밖에서도”로 작용합니다.
그것은 또한 “위에서와같이 아래서도”의 원리로 작용합니다.
현현은 중심점이 사방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현의 원리를 안다면 창조의 절반은 이해한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세상에서 현현의 개념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진을 현상(現像)한다고 합니다.
창조의 원리는 우리가 사진을 현상하는 원리와 유사합니다.
사진 현상은 평면적이고
사물의 현현은 입체적인 것인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사진을 현상하기 전 단계는 필름 촬영입니다.
사진 현상 전에 사진을 찍는 행위가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바로 상상력입니다.
생각과 상상과 느낌이 사진을 찍는 행위입니다.
사진을 찍으면 필름에 각인됩니다.
그 필름이 잠재의식입니다.
우리 생각과 상상과 느낌은 잠재의식에 각인됩니다.
잠재의식에 각인된 인상이 현상소에 가서
현상의 단계를 거치면 세상에 현현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원리는 이렇게 간단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진을 찍고 그것을 현상하는 것이 바로 창조입니다.
자, 그러면 비전 보드는 여기서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비전 보드는 바로 사진에서는 필름 촬영의 단계이고
건물을 짓는 데서는 청사진의 단계입니다.
비전 보드에 올라가 있는 그림이나 사진은
사물과 상황으로 현현합니다.
비전 보드는 바로 창조의 청사진 단계를 돕는
강력한 창조의 도구입니다.
이것이 없을 때는 마음속 관념으로 이 일을 하지만
비전 보드에 소망하는 그림이나 사진을 올려두면
그것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그와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나고 드러나는 것입니다.
비전 보드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그 오른쪽에 장기 목표를 두고 왼쪽에 단기 목표를 두는 것은
시간의 선형성을 고려하여 배치한 것이고,
사실은 시간은 환상이고 모든 것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장기 목표와 단기 목표는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비전 보드는 단지 걸어두고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찍은 필름이 있으면 그것을 현상소에서
사진을 현상해야 사진이 완성되듯이
내면의 신성이 주는 영감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사사물물이 끌어당겨져 세상에 현현하는 것입니다.
이제 소원성취 게시판을 만드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심우도의 최종단계 도지통명(道之通明)입니다.
왼쪽에는 전술적 목표 오른쪽에는 전략적 목표라 하였으니
심우도의 도지통명 그림을 프린트하여
게시판의 오른쪽에 가로로 붙입니다.
왼쪽에는 당면한 목표를 상징하는 그림이나 사진을 붙입니다.
전술 목표는 전략 목표에 복무합니다.
전술 목표는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단기적 목표입니다.
당면 목표는 사람마다, 시기마다 다를 것입니다.
궁극적 목표는 변하지 않습니다.
수도의 목적인 도통을 달성할 때까지.
다이소에 가면 자석이 붙는 화이트보드(40×60cm)가 있고
파란색 원형 자석이 있습니다.
이 자석 보드를 소원성취 게시판으로 사용합니다.
여기에 도지통명 그림을 A4 용지에 칼라로 프린트하여
오른쪽에 가로로 놓고 파란색 원형 자석으로 고정합니다.
청사진의 청은 푸를 청(靑) 자입니다.
靑은 파자하면 十二月이고 12월은 도(道)를 뜻합니다.
청색은 창조의 색입니다.
당면 목표는 왼쪽에 세로로 붙입니다.
이 게시판을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둡니다.
고무 자석 화이트보드(40×60cm)도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구매합니다.
현관문이 철문으로 된 집은
이것을 현관문에 붙이시면 됩니다.
당면 목표에는 <요람>에 나오는
조직기구 그림을 프린트하여 왼쪽에 세로로 붙입니다.
이 조직기구 그림은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전체적으로
<도헌>과 도전님의 훈시 말씀대로
수도하고 사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시기 우리의 당면 목표는 오직 이것이 되어야 합니다.
도(道)는 곧 법(法)입니다.
내 안과 밖에서 도법이 바로 서지 않고서는
수도의 완성과 사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안에서와같이 밖에서도’라는 신성한 법칙과 같이
나 자신이 밖에서 보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것의 반영입니다.
밖에서 시비와 쟁투를 본다면 그것은 내 안에도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나의 반영입니다.
그러니 세상을 바꾸려면 나 자신을 바꾸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도가 사회개조와 세계개벽을 위해서
인간개조 정신개벽을 외치는 이유입니다.
나 자신이 먼저 도전님의 법으로 바로 서야
종단도 사회도 바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도전님의 말씀대로 도법을 세우는 것은
‘나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 시기 우리들 각자의 당면 목표는
도법을 바로 세우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도주님의 이 말씀도 기억하세요
“오도의 수도법방은 곧 태극의 용(用)임을 다시 각지(覺知)하라.
이는 개인의 도통 성취만을 위함이 아니요,
도단(道團) 곧 전체 도인을 위하고
군생광구(群生匡救)를 위한 법방이니라.
그러나 전체는 곧 개체(個體)의 집합이니
개개인이 모두 잘하여야 전체도 잘됨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개인이 곧 전체며 전체가 곧 개인임을 깨닫고
합덕공부(合德工夫)로 임하되
‘나만’, 또는 ‘나부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하느니라."
운수 도통에서는 ‘나부터’를 버리고,
잘못의 시정에서는 ‘나부터’ 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도법이 바로 서고
종단의 운영도 도전님의 도법대로 올바르게 운영될 때
이 당면 목표를 내리고
다른 목표를 상징하는 그림이나 사진을 붙입니다.
소원성취 게시판을 설치할 때는 간단한 의식을 행합니다.
여기에 궁극의 목표인 도지통명 그림을 붙인다는 것은
이 목표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강한 의도를 설정하는 것이므로
성경신을 다하여 성지우성(誠之又誠) 진지우진(進之又進)할 것을
상제님과 천지신명 전에 맹세하는 의식을 행하고 설치합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의도를 세운다는 것은
양자 물리학적 관점에서 자신의 우주가
그 목표를 지원하기 위해 재정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상제님께서는 <현무경>에
”充者慾也 以惡充者成功 以善充者成功“이라 표현하셨습니다.
채울 충(充), 욕심 욕(慾),
욕(慾)은 하고자 하는(欲) 마음(心)으로 의도(意圖)를 뜻합니다.
의역하면, “충이란 의도니라, 악한 의도를 가진 자도 성공하고
선한 의도를 가진 자도 성공하니라.”
나쁜 의도를 가진 일은 나쁜 결실을 맺고
좋은 의도를 가진 일은 좋은 결실을 맺는다는 뜻입니다.
우주는 어떤 일도 판단하지 않고
우주에 보내지는 진동을 그대로 돌려줍니다.
<대순지침>에 도(道)는 두과지리(豆瓜之理)와 같다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도의 이치란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오이 심은 데 오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식적으로 자신이 내보내는 진동을
좋게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혀 관리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감정이 일어나는 대로
자신의 진동 상태를 방치하면
그에 걸맞은 우주의 응답으로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인세에서 불행과 고통의 원인은 이토록 단순한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과 기쁨의 삶은 어떻게 가능합니까?
감정(e-motion)은 움직이는(motion) 에너지(energy)입니다.
감정은 생각의 반영입니다.
감정에는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 두 가지가 있습니다.
생각에도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 두 가지가 있습니다.
생각에서 생각이 납니다. (교법 2장 53절)
좋은 생각에서 좋은 생각이 나고
나쁜 생각에서 나쁜 생각이 납니다.
그 생각이 감정을 일으키고 감정은 진동을 일으키고
그 진동이, 같은 사물과 사람과 상황을 끌어당깁니다.
좋은 진동이 좋은 운명을 끌어당기고
나쁜 진동이 나쁜 운명을 끌어당깁니다.
그러니 자신의 진동을 좋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진동을 좋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좋게 유지해야 하고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좋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좋게 유지 해야 합니다.
다만 생각은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일어나니
관리하기가 쉽지 않고 대신 생각보다는
덩치가 큰 감정을 관리하기는 용이 합니다.
“늘 사랑과 감사, 기쁨 속에 머무세요!”
“모든 것을 상제님의 임의에 맡기세요!”
사랑과 감사가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다면
그것은 기쁨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과 감사, 기쁨은 영(靈)의 세 가지 속성입니다.
여기에 음양의 두 가지 속성 허용(陰)과 축복(陽)을 더하면
영의 다섯 가지 속성은 사랑과 감사, 기쁨, 허용, 축복입니다.
영은 오직 사랑합니다!
영은 오직 감사합니다!
영은 오직 기뻐합니다!
영은 오직 허용합니다!
영은 오직 축복합니다!
영이 바로 나입니다.
영으로서 생각하고, 영으로서 듣고,
영으로서 말하고, 영으로서 행동하세요.
영으로서 살아가세요!
이것이 나의 진정한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합덕(合德)과 조화(調化), 상생(相生)의 사회를 위하여!
늘 사랑과 감사, 기쁨 속에 머무세요!
모든 것을 상제님의 임의에 맡기세요!